파리 날리는 망미동 '비콘 그라운드'… ‘심폐소생술’마저 물건너가나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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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성화 대책 용역 예산 확보 못해
"체류시간 늘릴 콘텐츠 채워야"

지난 20일 오후 6시께 한창 저녁 장사 시간에도 비콘 그라운드 가게 문은 모두 닫힌 채 썰렁한 모습이었다. 김준현 기자 지난 20일 오후 6시께 한창 저녁 장사 시간에도 비콘 그라운드 가게 문은 모두 닫힌 채 썰렁한 모습이었다. 김준현 기자

도심 속 문화복합공간을 목표로 부산시가 야심 차게 조성한 ‘비콘 그라운드’가 침체를 벗지 못하고 있다. 활성화 대책을 찾기 위한 연구마저 예산 부족으로 무산돼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지난 20일 오후 6시께 부산 수영구 망미동. 고가도로 하부에 위치한 비콘 그라운드는 손님이 모여야 할 저녁 시간에도 한산한 분위기였다. 방문객은 10명에 불과했다. 각종 음식점이 모여있는 핵심구간 ‘쇼핑 그라운드’에는 2개만 문을 열고 대다수 가게가 문을 닫은 상태였다. 이날 <부산일보> 취재진에게 한 식당의 점주는 “SNS에서 비콘 그라운드를 두고 부산 최악의 관광지라고 쓴 표현을 봤다”며 “비콘 그라운드 일원으로 씁쓸하지만, 표현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부산시는 ‘비콘 그라운드 활성화를 위한 정책연구용역’ 명목으로 편성한 예산 8000만 원이 내년 예산안에 반영되지 못했다고 22일 밝혔다. 비콘 그라운드의 계속되는 고전에도 시의 재정 여건 탓에 부산시의회가 심의하는 내년 예산안에 포함되지 못한 것이다.

비콘 그라운드는 국·시비 90억 원을 들여 2020년 조성됐다. 전체 면적 1979㎡에 지상 2층 규모로 컨테이너 공간을 조성한 복합 생활문화시설이다. 그러나 코로나19 등 이유로 시민 발길이 끊기고 빈 가게가 늘어나 활성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시는 전문 기관에 용역을 의뢰해 비콘 그라운드 활성화 대책을 내놓으려 했지만, 예산 확보에 실패하면서 대책 마련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대책이 지지부진하는 동안 빈 가게가 늘어나고 있다. 시에 따르면, 이달 기준 비콘 그라운드 전체 51개 가게 중 12개가 비어있는 상황이다. 시 관계자는 “최근 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과가 가게 2개분의 부지를 사용할 계획으로 조만간 빈 가게는 10개로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는 대부분 가게가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지만,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가게를 창고로 사용하거나 영업시간이 들쭉날쭉한 탓에 주민들은 이곳의 침체한 분위기를 더 체감하고 있었다.

매일 비콘 그라운드 인근을 산책한다는 주민 반 모(71) 씨는 “비콘 그라운드의 분위기가 죽은 지는 꽤 오래됐다”며 “과거에는 공공기관이 주최하는 행사를 열면서 그나마 활기를 띠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는데, 최근에는 그마저도 안 하는 것 같아서 의문이다”고 말했다.

시가 주도해 설립한 다른 문화시설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시에 따르면, 청년문화공간을 위한 사상구 ‘사상인디스테이션’은 더 이상 창업 공간을 운영하지 않는다. 이곳에 입주하려는 청년 층의 수요가 적기 때문이다. 현재는 공연 공간을 대여하거나 기획전을 여는 방식으로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사상인디스테이션을 위탁 운영 중인 부산문화재단에 따르면, 올해 들어 총 21번의 공연이 열리는 데 그쳤다.

부산시는 내년 추경으로 예산을 확보해 비콘 그라운드 활성화를 위한 정책연구용역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시 공공도시디자인과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초반에 인지도 확보를 하지 못한 게 타격이 컸던 거 같다”며 “유명 가게를 유치해 사람들 발길을 모으는 등 다양한 활성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사람들이 비콘 그라운드에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영산대 관광컨벤션학과 오창호 교수는 “고가 도로 하부의 죽은 공간을 활용한 비콘 그라운드 취지는 무엇보다 훌륭하다”며 “일일 강좌, 작은 도서관 등 시민들이 모여서 공간에 체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시설을 갖춰야 다른 시설들도 상승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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