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수험생의 빈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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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은 공모 칼럼니스트

공부 과정에 쏟는 노력·고생 대신
성적표라는 결과만 중시하는 사회
안타까운 수험생 자살 매년 반복

수능 점수가 전부가 아니라는 건
결과보다 더 소중한 게 있다는 뜻
그 빈칸을 헤아려주는 사회로 가길

“오늘 사회시험 조졌어.”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면서 우연히 학생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시험을 치르고 일찍 귀가하는 중학생들인 것 같았다. 꽤 진지한 그들의 목소리가 내게는 퍽 귀엽게 들렸다. 그러다 괜한 미안한 마음이 들어 신호등이 바뀌기 전까지 잠시 그 말의 무게를 느껴보려고 노력했다. 대단히 오랜 시절을 지나온 것도 아닌데, 나의 중학교 중간고사 사회 점수는 왠지 아득하게 느껴졌다. 벌써 그 마음의 무게를 잊고 말았다. 그 아이의 마음은 착잡했을 것이다. 그때는 사회시험 점수도 마치 인생의 전부인 것같이 느껴지는 때이니 말이다.

11월 16일, 2024학년도 대입 수능시험을 앞두고 ‘수능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다. 학생 땐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이 얄미웠는데, 이제 나도 수능을 남 일처럼 떠올리며 수능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시간을 돌려 그때로 돌아간다면 여전히 똑같이 힘들어했을 것이다. 수능이 끝나고 들이닥친 이 한파는 또다시 수능 날의 온도와 느낌을 생생히 기억하게 한다.


수능을 다 지나온 사람들은 수능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들 말하지만, 외신들은 매년 이색적인 대한민국 수능 풍경에 주목한다. 비행기의 이착륙도 금지되고 출근 시간도 늦출 만큼 온 나라가 수능에 맞춰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수능이 대학 입학을 결정짓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연봉 수준, 심지어 결혼까지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이 말은 과연 사실일까?

학창 시절 나는 성실했지만 공부를 특출나게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래서 몇몇 선생님들은 나를 아쉬운 인재로 생각했다. “성적이 애매하다”거나 “열심히 하는데 좀 아쉽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그 말을 스스로에게 다시 했다. 나는 성적이 애매해. ‘열심히’는 하는데 ‘잘하지’는 못해. 돌이켜보면 더 열심히 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칭찬해 줬을 법도 한데, 그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나의 ‘열심’에 관심 갖는 사람을 만나기도 드물었다. 다만 내가 몇 등급인지, 어느 대학에 갈 수 있는지만이 중요한 시절이었다.

그러다 한 대학교의 면접에서 뜻밖의 질문을 만났다. 한 면접관은 “학창 시절의 일부를 외국에서 보내서 적응이 어려웠던 것 같은데, 성적을 올리는 게 힘들지는 않았나요?”라고 물으며, 자기소개서에 차마 쓰지 못했던 나의 공부가 부진했던 이유와 노력 방식을 물었다. 예상치 못하게 눈물이 났다. 내 자기소개서를 읽은 선생님과 면접관 누구도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해준 적은 없었다. 그는 성적이 다 말해주지 못하는 나의 ‘빈칸’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자기소개서에는 쓰지 못했던,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어려움의 빈칸 말이다.

울면서 면접장을 나온 나는 대학은 물건너갔다고 생각했지만 운 좋게 그 면접에 붙었다. 4년간 학교에 다니면서 그 면접관을 다시 만나지 못해 아쉬웠다. 나중에 만난다면 허리를 굽혀 공손하게 인사라도 하고 싶었다. 그런 질문을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그 질문은 내 학창 시절의 마침표를 찍는 것 같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년 같은 뉴스를 접한다. 수능을 앞두고 목숨을 끊는 수험생과 관련된 소식을 말하는 것이다. 올해도 수능 전날, 경기도 화성에서 한 수험생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보고되었지만, 해당 학생은 시험에 대한 부담감을 호소했다고 한다. 얼마나 힘들고 간절하게 입시를 준비했을지 그 노고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수험생들의 빈칸을 생각해 본다. 그들의 노력과 마음과 고됨을 짐작해 본다. 앞으로는 이런 뉴스를 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공부하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 힘들었겠다.” TV에 자주 나오는 아동 전문 상담가가 매일 부모들에게 시키는 흔한 말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아이들에게 이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다. “잘했어”라는 결과에 대한 칭찬을 오히려 더 쉽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사회시험을 망쳤다는 그 친구에게, 수능을 마치고 후련함과 힘든 마음을 동시에 느끼고 있을 수험생들에게, 수고했다는 응원을 보내고 싶다. 수십 개의 이력서를 쓰고, 자기소개서를 탈고하고 있는 2030 독자들에게도 그 말을 전하고 싶다.

수능 점수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은, 정말 점수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다만 결과가 말해주지 않는 더 소중하고 빛나는 것들이 있다는 것임을 내포하는 말일지 모른다. 어쩌면 목표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자세, 삶에 대한 태도 말이다. 그런 것들이 모여야 수능을 망쳐도, 부모의 기대에 못 미쳐도, 살아갈 힘이 나지 않을까. 점수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빈칸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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