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보이지 않는 폭력에 맞서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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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파이퍼 ‘카리아티드(미우라)’

ⓒ Paul Pfeiffer. Courtesy Paula Cooper Gallery, New York ⓒ Paul Pfeiffer. Courtesy Paula Cooper Gallery, New York

아침에 눈을 뜨고 잠자리에 들기까지, 일상을 점령하고 있는 대중문화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가치관과 사고체계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우리는 스포츠 경기, TV쇼, 유명인을 선망하는 현상 등 넘쳐나는 미디어 속 이미지가 전하는 달콤하고도 자극적인 메시지를 가감없이 받아들이기 쉬운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폴 파이퍼(Paul Pfeiffer, 1966-)는 이처럼 대량생산된 이미지가 개인의 삶을 잠식하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미국 작가다. 부산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카리아티드(미우라)’는 작가가 2004년부터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는 ‘카리아티드(Caryatid)’ 연작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텔레비전 형태인 작품의 제목을 ‘카리아티드’로 정한 것일까. 카리아티드는 고대 그리스 사원에서 기둥 역할을 하는 노예 여성의 조각상을 뜻한다. 그는 건축물의 무게를 지탱하는 인물상들처럼 텔레비전, 즉 대중매체 또한 현대사회를 단단히 받드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대량생산, 대량소비되는 이미지들이 개인들을 몰개성한 상태로 만들며, 이는 획일적이고 동질화된 현대사회를 유지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텔레비전 속 인물을 살펴보자. 이 인물은 복싱 선수인 다카시 미우라(Takashi Miura, 1984-)로, 보이지 않는 상대방의 타격으로 몸이 뒤틀리고 휘청이는 모습을 보인다. 작가는 미우라를 타격하는 상대 선수의 모습을 제거하고, 슬로우 모션으로 조작하여 자세하게 보여주려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누군가에게 맞고 있는 선수의 움직임, 표정의 변화 등을 더욱 쉽게 포착할 수 있다. 복싱은 대중이 만연하게 즐겨온 인기 스포츠이자 오락거리로 소비되어 왔다. 그러나 작품은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선수에 시선이 집중되도록 하면서 우리가 평소 인지하지 못했던 폭력의 잔혹함을 온전히 마주하도록 한다.

현대사회의 스펙타클(spectacle)은 끊임없이 개인을 공격한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압박받는 복싱 선수는 바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세계의 일방적인 공격에 맞서고 이따금 강한 펀치를 날리기도 하면서 보이지 않는 존재의 형체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군분투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 이해리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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