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당무유용(當無有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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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에릭 사티의 음악은 늦가을 낙엽의 비움을 닮았다. 부산일보DB 에릭 사티의 음악은 늦가을 낙엽의 비움을 닮았다. 부산일보DB

‘개를 위한 엉성한 진짜 전주곡’, ‘바싹 마른 배아’, ‘관료적인 소나티네’.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의 작품들이다. 제목이 기이하다. ‘짐노페디’, ‘그노시엔느’처럼 새로 만든 단어도 있다. 음악적 표현에도 ‘매우 기름지게’, ‘구멍을 파듯이’, ‘달걀처럼 가볍게’, ‘치통을 앓는 나이팅게일처럼’과 같은 괴상한 지시어를 붙였다. 마디수를 적지 않거나 아예 마디줄이 없는 작품도 있다. 1920년 파리의 연극 공연에서 초연한 ‘가구음악’은 그야말로 파격적이다. 음악을 경청하지 말고 돌아다니거나 이야기를 나누라고 권했다. 음악이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가구나 벽지처럼 그저 공간을 채우는 질료이기를 바랐다. 그의 음악은 주류 음악사회의 논리와 미학에 대한 도전이자 혁신이었다.

19세기 유럽 음악사회는 전통을 따르면서도 화려한 기교와 거대한 스케일을 지향하는 독일 낭만주의 음악이 지배적이었다. 무겁고 심각하고 진지한 음악이다. 이러한 기풍 속에서 에릭 사티는 독특한 아이디어와 유머로 아카데미즘의 경직성과 허례허식에 빠진 감상 태도를 풍자했다. 과도한 감정 표현이나 엄격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단순하고 무심하며 편안한 음악이다. 시대의 이단아에게 평단의 반응은 가혹했다. 괴팍한 행동이나 파리음악원 중퇴 이력이 입길에 오르내리며 조롱과 멸시가 뒤따랐다.

에릭 사티는 몽마르트르 언덕 카바레에서 피아니스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스스로 상아탑이라 이름한 파리 교외의 낡은 집에서 평생 가난과 고독 속에 유폐된 삶을 살았다. 그의 음악은 1963년 루이 말 감독이 ‘도깨비불’의 영화음악으로 사용하면서 새롭게 주목받았다. 사후 38년 만이었다. 오늘날까지 영화, 드라마, 광고, 게임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꽉 채우지 않고 비어있는 듯한 단조롭고 간결한 선율은 음악적 전통이나 양식, 테크닉을 걷어내고 최소한의 소리만으로 직조했다. 클래식음악의 무거움과 대중음악의 경쾌함을 넘나들며 현대인에게 가만한 선율로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늦가을이다. 초록의 생명을 죄 떨구어 낸 나무들은 에릭 사티의 음악을 닮았다. 겸허하게 비워내며 충만의 시간을 예비한다. 기다림이야말로 자연의 섭리가 아니던가. 거리에 나뒹구는 낙엽은 신생의 믿음이자 약속이다. 삶이란 끝없이 채우고 비우는 과정의 연속이다. 당무유용(當無有用). 비워야 채워진다. 무수한 가지를 쳐내며 고갱이를 남긴 에릭 사티의 음악처럼 말이다. 그는 예술가들의 예술적 자의식 과잉에 자각을 불러일으키며 삶에 뿌리를 둔 새로운 음악미학에 이르는 길을 열지 않았던가. 이 가을 아직 멀리 있는 새봄을 기다리며, 달콤한 선율로 출렁이는 ‘그대를 원해(Je te veux)’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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