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란 첫 장편… 지구 파괴 맞서 ‘사랑’ 일깨우는 SF소설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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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케플러가 만난 지구’
생태계와의 교감 회복 호소

첫 장편 <케플러가 만난 지구>를 고금란 소설가는 “이대로 가다간 21세기 말쯤 지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행성이 될지 모른다”고 했다. 고금란 제공 첫 장편 <케플러가 만난 지구>를 고금란 소설가는 “이대로 가다간 21세기 말쯤 지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행성이 될지 모른다”고 했다. 고금란 제공

이 소설의 경고는 무섭다. 지구가 파괴 직전에 놓였다는 것이다. 호소는 애절하다. ‘재능의 머리’가 아니라 ‘사랑의 마음’을 제발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1995년 등단한 소설가 고금란의 <케플러가 만난 지구>(호밀밭)는, 네 권의 소설집과 두 권의 산문집을 낸 그의 첫 장편소설이다. SF(과학소설)라는데, 이야기 전개는 판탄지 동화에 가깝다.

생태계 파괴로 기후 위기가 목을 옥죄는데도 인간들은 여전히 눈이 벌건 채 딴청을 피우고, 그 지구를 향해 우주의 경고처럼 ‘초대형 혜성’이 다가오는 중이다. 인간의 경쟁과 이기심이 자석처럼, 지구를 파괴할 초대형 혜성을 끌어당기는 상태를 초래한 것이다.

소설은 천년왕국 신라, 그리고 가야가 지구를 구원하리라는 판타지적 설정을 했다. 신라와 가야의 상징물은 구체적으로 문무왕 수중릉, 천전리 각석, 구형왕릉이다. 그것에 신라와 가야 왕국의 애민 사상과 이상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소설에 따르면 북극성에 ‘신(神)’적인 우주인들이 사는데, 이들이 가망 없는 지구를 포기하고, 대신 지구와 환경이 비슷한 케플러 별에 새 왕국 건설 프로젝트를 가동한다는 것이다. 새 왕국의 모델이 천년왕국 신라다. 신라가 택해진 것은, 로마와 함께 천년 역사를 이은 왕국이며, 특히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 이념으로, 멋과 신명을 누렸고, 평화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라사 속에 이 소설 주제인 사랑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국토를 지키기 위해 죽어서도 동해의 용이 되겠다고 한 문무왕이 그 예다. 소설 속에 나타나는 문무왕은 “나는 사랑을 실현하려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그걸 듣는 소년도 “새로운 왕국에서 사랑을 실현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케플러가 만난 지구>. 호밀밭 제공 <케플러가 만난 지구>. 호밀밭 제공

이 소설은 천전리 각석의 화랑 이름에서 시작했다. 거기에 화랑 이름 여럿이 새겨져 있는데, 그중 ‘호세’와 ‘수품’이 이 소설에 등장한다. ‘천마호’를 타고 지구를 구하러 오는 이는 ‘호세’이고, 호세와 함께 보물을 찾아나서는 소년 한별이는 전생의 ‘수품’이다. 그러고 보니 ‘호세(好世)’는 ‘세상을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뜻으로 주제와 통하는 이름이다.

이 소년 둘이 ‘보물 3가지’를 찾아 나서는데 호세가 21일 만에 ‘보물 3가지’를 찾아 우주로 돌아가야 새 왕국 건설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소년 둘이서만 보물을 찾을 수 없는 일이다. 조력자들이 나오는데 짐작이 가는 문화계 안팎의 실제 인물이 나온다. 경주에서 고택을 복원해 신라문화 답사 안내를 하는 이(그는 <부산일보>에 기획물 연재를 한 이재호다), 터널이 뚫리는 산을 살리기 위해 단식을 감행했던 스님, 신라 비단벌레를 찾아 나선 감은사지 인근의 인물, 그리고 작가에게 ‘순정’이란 별칭을 선물한 인디가수 등이 그들이다.

먼 우주와 지구의 생명이 이어져 있다는 것은 불교 사상이고, 신라와 가야 역사를 훑는 것은 지역사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며, 파괴되는 지구를 되살려야 한다는 것은 생태 사상과 연결돼 있다. “인간이 의존해야 할 것은 신이 아니라 생태계”란 문장은 지구 파괴를 걱정하는 애절한 호소다.

그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것,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란다. 마이클 잭슨 노래 ‘힐 더 월드’에 ‘네 마음속에 한 자리가 있어/그리고 난 그것이 사랑이란 걸 알아’라는 가사가 그 점을 일깨운다. 소설에 다음과 같은 진한 문장이 있다. “옳은 것을 증명할 필요는 없어요. 그 자체로 옳은 거니까요. 그리고 그 옳은 것들이 모여서 사랑의 밑바탕이 돼요.” 그런데 보물 3가지는 과연 무엇일까.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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