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도전하려면 ‘실패 백서’부터 만들어라
부산 득표한 29표 상당수가 유럽표인 듯
아프리카·태도국 등 집중 설득 별무효과
선거 직전 표 달라는 전략 역부족 지적도
놓친 표 분석 백서 만들어 전략 새로 짜야
부산이 사라진 2030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개최의 꿈을 ‘2035년 재도전’으로 이어가려는 모습이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만약 재도전에 나설 경우, 이번 유치전 전 과정의 득표 요인과 감표 요인, 전술적 착오와 낭비 요소 등을 면밀히 분석한 ‘실패 백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이번 투표 결과에서 드러난 우리 측의 정보·판세 분석의 문제점 또한 냉정하게 짚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나 유치위원회 측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국제박람회기구(BIE)에서의 투표 결과가 공개되기 직전까지 최소 60표 이상 득표를 예상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국가별 투표 결과는 비공개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가 공개한 리야드 공식 지지 국가 122개국 명단과 우리 측 판단 결과를 종합하면 부산을 지지한 29개 국가 상당수는 유럽에 포진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유럽 국가가 대부분이고 북유럽과 동유럽 일부, 북미와 남미 일부 국가, 오세아니아, 동아시아 일부와 극소수 아프리카 국가에서 득표를 했다는 얘기가 돈다.
평소 인권 문제와 금력을 앞세운 사우디의 외교 행보에 불만을 가진 유럽 국가들이 다수 우리를 지지한 반면, 정부나 재계, 유치위 관계자들이 수차례 현지를 방문하며 공을 들인 아프리카,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 태평양도서국의 경우, 들인 노력에 비해 성과가 저조했던 셈이다. 결국 ‘고기 대신 고기 잡는 법을 전수하겠다’는 우리 측의 전방위적인 외교전이 실제 득표로까지 이어지는 데에는 역부족이라는 얘기인데, 재정적으로 열악한 소규모 국가들의 경우 사우디의 막강한 ‘오일 머니’를 거부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게 우리 측의 판단이다. 문제는 그런 논리라면 2035년 개최지 경쟁에서 중국과 같은 경제 대국과 재격돌할 경우 또다시 열세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실패 백서’를 만들어 이번 유치전 전 과정을 복기한 이후 2035년까지 시기별 전략을 꼼꼼하게 짜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 부산의 한 정치권 인사는 “작년에 중앙아시아에 이른바 ‘~스탄’ 국가 중 한 곳을 방문했는데, 그 나라 외교부의 핵심 과제 중 하나가 ‘비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한국 외교장관을 한 번 만나는 것’이더라”면서 “평소에는 장관이 면담 요청 한 번 안 들어줄 정도로 무관심하다가 갑자기 표 때문에 접근하는 우리가 그렇게 곱게 보일리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어차피 우리 전략은 진정성 있게 시간을 갖고 접근할 수밖에 없는 방식 아니냐”면서 “이런 부분들을 세심하게 짚어서 한 표, 한 표 모으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일부에서는 전술상의 ‘오류’도 지적한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한국의 발전 경험은 태평양·카리브해 도서국에 적용하기 쉽지 않아 우리의 ‘기술 전수’ 구애가 그다지 실효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에 압도적 영향력을 가진 중국과 적대적 외교 관계 설정이 패착이었다는 야당의 지적도 나온다. 물론 득표를 위해 외교 정책 근간을 바꿀 수는 없지만, 중국의 지나친 ‘한국 비토’를 완화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부산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실패 백서를 통해 제기된 모든 문제들을 꼼꼼하게 되짚고, 이에 기반해 실효적인 접근법을 다시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박진 외교부장관은 3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 “이번 유치 실패의 진정한 교훈을 얻기 위해서 (유치 과정을)심층 분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