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만 인구 중 학생 10% 육박… 도시 경제활동 구심점[유럽 대학도시서 배운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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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살라망카
식당·상점·주택임대 등 직간접 영향 미쳐
면학 분위기·개방적 문화 지역 발전 견인
대학 매출액 자치주 총생산의 4.8% 차지
파격 장학금 지원 지방정부 든든한 우군

살라망카 대학과 도시 중심부인 마요르 광장을 잇는 대학가가 학생들로 활기를 띤다. 대학과 도시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광경이다. 살라망카 대학과 도시 중심부인 마요르 광장을 잇는 대학가가 학생들로 활기를 띤다. 대학과 도시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광경이다.

살라망카는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서쪽으로 220km가량 떨어진 ‘교육의 도시’다. 1218년 설립된 살라망카대학교는 스페인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대학이자, 세계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대학이다. 여러 대학 도시가 그러하듯 캠퍼스를 둘러싼 담장이 없어 대학 건물이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다. 살라망카는 스페인의 다른 도시에 비해 물가가 싸서 체류비용이 적게 든다. 어학원도 많아 외국에서 스페인어를 배우러 오기에 가장 좋은 도시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곳에는 살라망카대학 외에도 교황청립 살라망카대학이 있다. 원래 살라망카대의 신학부였으나 1854년 해체됐다가 1940년 교황 비오 12세가 복원했다. 스페인도 한국처럼 지속적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어 대학마다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그러나 유독 살라망카대는 2023년도 학부생이 전년도에 비해 2100여 명이나 늘어났다. 총 학부생 숫자는 1만 2752명인데 이 중 신입생은 4291명이다. 14만여 명의 도시 인구도 학생과 젊은 층 비율이 매우 높다.

유럽의 다른 명문 대학처럼 살라망카대도 처음엔 성당 부속 신학교로 문을 열었다.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이 대학 공의회에서 자신의 항로 개척에 대해 강의했다. 당시 학생 중 한 명이 남미의 아스텍 제국을 정복한 에르난 코르테스다. 그만큼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위상을 지니고 있는 대학이다. 당시 도시 인구 2만 4000명 가운데 학생이 6500여 명이었다고 하니 대학이 도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해 볼 만하다.

그 후 살라망카대는 나폴레옹의 침공과 스페인 내전 등으로 수많은 건물이 파괴됐다. 강의실이 주민 대피소로 바뀌는 위기도 맞았다. 그러다 스페인 정부는 비대해진 종교 권력의 부작용을 벗어나기 위해 대학을 교회에서 분리하고 과감한 교육 개혁에 나섰다.

그 후 살라망카대는 유럽의 배움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지금도 철학과 문학, 법학, 과학, 의학, 약학 등에서 명성이 높다. 매년 세계 각국에서 유학을 오는 외국인 학생만 2000여 명에 달한다.

매년 배출되는 4500여 명의 졸업생은 스페인 정부의 요직이나 문화계, 과학계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특히 스페인에서는 신경과학과 암 연구의 중심지로 이름이 높다. 초단파 레이저 기술 등 의학에서도 상당한 두각을 보여 1989년에는 케임브리지대학과 공동 연구센터를 차리기도 했다. 살라망카대 한국어학과의 김혜정(62) 교수는 살라망카의 가장 큰 장점으로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와 개방적인 도시 문화를 꼽았다. 김 교수는 “한국 사람 입장에서 보면 너무 조용하고 심심한 도시이지만 중세 시대 정취가 그대로 살아있고, 치안도 우수하다”면서 “다른 걱정 없이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는 점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말했다. 대학과 도시의 관계에 대해서도 “식당이나 상점을 운영하는 상인뿐만 아니라 주택 임대, 대학 교재·장비 납품 등 대학 덕분에 ‘먹고 사는’ 주민 비중이 상당하기 때문에 대학을 도시 공동체의 중심으로 여긴다”고 덧붙였다.

살라망카가 속한 ‘카스티야 이 레온’ 광역자치주가 외부기관에 의뢰한 조사에 따르면 살라망카대의 매출액은 주 GDP의 4.8%를 차지한다. 웬만한 대기업보다 지역경제 기여도가 높은 셈이다.

살라망카대학원에는 78개의 세부 전공이 있고, 석·박사 과정 2000여 명이 등록돼 있다. 로시오 루카스 나바스 대학원 교수는 “석사 학위를 취득한 학생들의 취업률이 지난해 94%에 달했다”면서 “생물학 및 암 클리닉, 정보통신(ICT) 교육, 스페인어 교육, 고급 영어 연구, 문화 유산 평가 및 관리 분야의 석사 학위가 올해 크게 두각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대학도시 살라망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카스티야 이 레온’ 지방정부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지역 대학원생을 위한 ICE 장학금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자치주 내의 기업이나 기술센터, 협회 등에서 6개월에서 최장 48개월까지 근무하면서 국제화, 자금 조달, 인프라 구축 등의 비즈니스 경쟁력을 키우는 경험을 쌓는데 이를 석·박사 과정과 함께 수행할 수 있다. 학기당 최대 2000유로의 장학금을 준다. 스페인은 모든 대학이 공립이어서 연간 등록금이 1000유로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혜택이다.

살라망카(스페인)/글·사진=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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