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 이재명 대표, 산은법 ‘산’자도 안 꺼냈다
13일 부산서 민주 현장 최고위
가덕신공항 등 현안사업만 언급
산업은행 이전 질의·건의 외면
개정안 연내 처리 불발 가시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3일 부산을 찾았지만 지역 최대 현안 중 하나인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공식 석상에서 한 의원이 KDB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언급하자 불편한 감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국회 다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민주당의 노골적인 몽니에 산업은행 부산 이전 마지막 퍼즐인 산업은행법 개정의 연내 처리 불발이 가시화되는 모습이다.
이 대표는 이날 민주당 부산시당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열었다. 2030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부산 유치 무산으로 상심한 부산 시민을 위로하고 재도약을 위한 발전 방안을 제시하기 위한 방문이라는 게 민주당 측 설명이다. 이에 지역에서는 이 대표가 부산에서 가장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에 대한 언급도 있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나왔다.
그러나 이 대표는 “민주당은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가덕신공항이 온전한 글로벌 공항으로 개항할 수 있도록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 “북항 재개발, 광역 교통망 확충 같은 현안 사업도 중단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하겠다” 등 기존에 진행 중인 사업만 거론했을 뿐 산업은행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엑스포 유치 실패 때문에 부산에 많은 분들이 좌절하고 있는 것 같다”며 “실패했다고 포기할 게 아니라 그 이상으로 부산 지역 발전을 위한 정부의 재정적 투자 집중이 반드시 필요하다 보고 우리 민주당이 더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 박재호(부산 남을) 의원이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국토균형 발전과 수도권 과밀화 문제를 해결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참석자 가운데 유일하게 산업은행을 직접 언급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고개를 숙여 종이를 만지작거리는 등 외면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최고위원들도 윤석열 정부와 여당을 향해 맹공을 펼치는 데에만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지역에서는 월드엑스포 유치 실패를 위로하고 미래 발전 방안을 내놓겠다는 당초 취지와 다르게 회의가 진행돼 빛이 바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표가 부산을 찾아 산업은행 이전에 대해 언급을 일절 하지 않으면서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민주당이 21대 국회 내 산업은행법 개정에 협조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 대표가 이번 부산 방문에서 내놓은 핵심 메시지는 사실상 산은법 개정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 아니겠나”라며 “선거를 앞둔 부산 민주당 예비후보들의 머리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 본점을 부산으로 옮기는 것을 골자로 한 산업은행법 개정안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2년 가까이 계류 중이다. 국민의힘은 시급한 법안 처리를 위해 가동한 ‘2+2 협의체’ 논의 대상에 산업은행법 개정안을 포함시켰지만 이날 이 대표가 간접적으로 산업은행법 개정에 반대 의사를 드러낸 만큼 사실상 처리가 물 건너 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21대 국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 지도부가 노골적으로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외면하면서 부울경 차기 총선 판세는 더욱 예측불가로 흘러갈 전망이다. 세계박람회 유치 실패로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동반 하락세를 보이는 가운데 민주당 지도부까지 부산 최대 현안에 말을 아끼면서 지역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역대 최악의 비호감 총선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