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 살인범 공개” 빌미로 다시 문 연 ‘디지털 교도소’
알권리 내세운 사적 제재 논란
신상공개 사이트 4년 만에 부활
법조타운 칼부림 유튜버 비롯
범죄 혐의자 100여 명 공개
2차 가해에다 낙인 효과 우려
방통위 오늘 접속 차단 여부 심의
범죄 혐의자 신상을 공개하는 웹사이트 ‘디지털 교도소’가 4년 만에 사이트를 다시 열고 부산법원 종합청사 앞에서 흉기 피습 사건을 벌인 남성 신상을 공개했다. 잇따른 흉악 범죄로 국민 불안이 높아진 상황에서 사적 제재로 논란을 빚었던 사이트가 재등장한 것이다.
지난 9일 민간 웹사이트 디지털 교도소는 ‘부산 법조타운 칼부림 유튜버’라는 이름으로 50대 남성 A 씨 얼굴과 나이, 유튜브 채널 주소 등을 공개했다. ‘많은 공유 부탁드린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A 씨는 지난 9일 오전 9시 52분께 부산 연제구 법조타운 앞에서 50대 남성 B 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A 씨와 B 씨는 모두 유튜버다.
디지털 교도소는 범죄 혐의자 신상을 공개하는 웹사이트다. 복역 중인 범죄자를 비롯해 신상 공개가 확정되지 않은 일반인 등 100여 명의 실명과 사진, 소셜미디어 계정 등이 공개돼 있다. A 씨를 비롯해 부산 돌려차기, 거제 여자친구 폭행치사 사건 등 사회적으로 큰 공분을 산 범죄 가해자 신상도 웹사이트에 공개돼 있다.
2020년 처음 등장한 디지털 교도소는 범죄 혐의 확정 판결 이전인 피의자 신상을 공개해 사적 제재 논란이 불거졌다. 이후 웹사이트가 폐쇄되고 기존 운영진은 징역형 처벌을 받았다.
4년 만에 웹사이트를 복구한 디지털 교도소는 A 씨 신상과 함께 최근 발생한 명문대 의과대학생 여친 살인사건 피의자 신상도 공개했다. 디지털 교도소 측은 지난 8일 ‘여친 살해 수능 만점 의대생’이라며 20대 남성 C 씨 신상 정보도 공개했다.
디지털 교도소 측은 ‘지금이 디지털 교도소가 다시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며 ‘앞으로 성범죄자, 살인자에 국한하지 않고 학교폭력, 전세사기, 코인 사기, 리딩방 사기 등 각종 범죄자 신상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디지털 교도소가 공익적 활동인지, 사회적 심판으로 포장된 범법 행위인지를 놓고는 갑론을박이 거세다. 수사기관은 피의자 신상을 공개할 때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신중하게 판단하고, 판결 확정 전까지 피의자에 대한 무죄 추정 원칙을 지킨다. 반면 디지털 교도소는 신상 공개가 확정되지 않은 이들에 대한 정보까지 공개한다.
무분별한 신상 공개가 계속되면 피해자와 가족의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 A 씨 신상 공개 게시물에는 한 누리꾼이 댓글로 피해자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묻고 다른 누리꾼이 이에 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A 씨는 물론 피해자에 대한 악성 댓글도 이어졌다. 온라인에 신상이 유포되면 엉뚱한 인물이 지목돼도 낙인효과로 구제가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실제 2020년 7월에는 디지털 교도소가 범인으로 동명이인 신상을 잘못 공개해서 게시물을 삭제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수사기관이 정한 신상 공개 기준을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필요한 사이트다’ ‘보호받지 못한 피해자를 생각한다면 피의자 신상은 정당한 알권리다’ 등 옹호 의견도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디지털 교도소 접속 차단에 대한 검토를 거쳐 13일 통신심의소위원회에 상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방심위는 디지털 교도소가 처음 등장했을 당시에도 접속 차단을 결정했다.
경찰대 범죄학과 한민경 교수는 “신상 공개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국가의 결정에 기대기보단 내가 나서 범죄자를 찾고 나의 안위를 지키겠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늘어나고 있다”며 “디지털 교도소 재등장은 국가 처벌권에 대한 국민 신뢰가 낮아지고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