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그가 내미는 손, 최상의 생선 찾는 ‘수싸움’의 진수 [피시랩소디]
중도매인
손님 원하는 물량 확보 지상 과제
양·질 달라도 노하우로 품질 판별
믿고 찾는 ‘신뢰’ 구축이 곧 생명
경매사·경쟁자 간 심리 싸움 팽팽
적정 가격·필요한 양 사는 게 실력
“매일 균등한 품질의 생선을 손님한테 보내야 합니다. 비싸게 가격을 부르면 낙찰받을 수 있지만 그건 가격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일이죠.” 생선은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에 매번 공급되는 양과 질이 달라진다. 그럼에도 최상의 생선만을 골라내 마트, 전통시장 등에 공급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부산공동어시장(이하 어시장)의 ‘중도매인’들이다. 중도매인들은 어시장에서 열리는 경매에 참여해 유통처에 납품한다. 6월 기준 중도매인은 85명. 중도매인은 생선 품질에 대한 냉철한 판단뿐 아니라 경매사와 다른 중도매인 간 심리 싸움을 통해 손님이 요구한 생선을 확보할 수 있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손님이 믿고 자신의 생선을 맡길 수 있는 ‘신뢰 비즈니스’ 구축이 곧 중도매인의 실력이다.
■저마다의 품질 판별 노하우
중도매인은 손님의 필요에 맞는 생선을 저마다의 기준을 가지고 평가한다. 중도매인의 하루는 경매 한 시간 전인 오전 5시께 시작된다. 생선 품질 확인이 첫 업무다. 중도매인들은 경매 전 조업 정보가 담긴 어황 일보를 보고 생선을 잡은 바다 위치를 체크한다. 육안으로 보는 생선 품질을 확인하는 방법도 중도매인마다 모두 다르다. 실제로 한 마리를 가져다 구워 먹어보는 중도매인이 있는가 하면, 기름기를 측정하는 기계로 품질을 확인하는 중도매인도 있다. 생선의 배를 갈라 먹이가 아직 배에 남아 있는 지도 확인하고 생선을 눌렀을 때 단단한 지도 본다. 먹이가 남아 있을 경우 부패가 빠르고, 기름이 적은 생선은 손으로 눌렀을 때 푹 들어간다.
생선을 잡아 오는 운반선의 정보나 어종과 크기를 분류하는 인력들의 성향도 중도매인은 알고 있어야 한다. 저온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선령이 얼마 되지 않는 배가 있는가 하면 얼음과 함께 생선을 보관해 오는 배도 있다. 어창에 얼음을 담아 생선을 싣고 오면 생선에 상처가 날 수 있어 어가가 떨어질 확률이 높다. 또한 어종과 생선 크기를 분류하는 인력인 ‘부녀반’의 작업 스타일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수작업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어떤 부녀반은 어상자에 생선을 많이 담는가 하면 어떤 부녀반은 적게 담는다. 선사에 소속된 부녀반의 작업 스타일을 고려해 경매 때 가격을 불러야 한다. 명문화된 매뉴얼은 없다. 중도매인이 수십 년간 어시장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얻은 노하우들이다.
■손님이 원하는 생선은?
기본적으로 중도매인들은 손님들이 필요한 어종과 생선의 양, 품질을 파악하고 있다. 그럼에도 경매 전, 경매 중간, 경매가 끝난 후에도 실시간으로 경매 현황과 생선의 품질을 손님과 소통하며 구매할 생선을 결정한다. 주요 납품처가 전통시장인 76번 장용호 중도매인은 “어제 가져간 생선이 다 팔렸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오늘 조업량과 생선 상태 등을 고려해 예상되는 어가를 손님에게 전달한다”며 “경매 중간에도 예측한 어가와 달라지면 통화를 하면서 경매에 참여하는 등 손님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손님과의 신뢰 형성 여부다. 손님이 원하는 품질의 생선을 보내지 못하면 어김없이 불만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장용호 중도매인은 “만약에 손님이 필요한 생선이 오늘 비쌀 것 같으면 비슷한 크기의 다른 생선을 추천하거나, 가격이 비싸더라도 다른 종류의 좋은 생선이 있다는 사실을 전달한다”며 “가장 좋은 것은 매일 비슷한 품질의 생선을 일정하게 보내는 것이다. 중도매인의 업무는 신뢰 싸움이다”라고 말했다.
■낙찰의 기술
경매에 참여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군중 심리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적정한 가격에 필요한 양을 사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른 중도매인이 가격을 내는 손을 보지 못하도록 재빠르게 내거나 숨겨서 내는 등 수싸움이 필요하다.
경매는 경매사와 중도매인 사이에 생선을 두고 진행된다. 중도매인은 원하는 가격에 낙찰받기 위해 다른 중도매인들이 어떤 가격을 내는지 다른 대리인을 두고 전달받기도 한다. 경매사 옆에 이들이 서서 맞은편 다른 중도매인들이 어떤 가격을 내는지 몰래 손으로 중도매인에게 사인을 준다. 다른 중도매인의 납품처를 숙지하고 있는 것도 낙찰의 한 노하우이다. 마트 같은 경우는 중간 사이즈 고등어를 대량으로 조금 비싸게 경매 초반에 사는 경향이 있다. 또한 경매사의 경매 스타일을 파악해 낙찰에 이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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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랑 기자 r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