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의 법 밖에 팽개쳐진 그들은 ‘부모 찾기’ 흥정부터 해야만 했다 [귀향, 입양인이 돌아온다]
1. 부모 추적기: 험하고 비싼
에이전트가 수백만 원씩 올리기 다반사
성공 여부 확약도 없고 실패도 책임 없어
개인정보 보호법에 막혀 경찰도 못 도와
사적 발품 추적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
“에이전트가 가격을 1인당 400유로에서 3500유로로 올린답니다.” 입양인 ‘친부모 찾기 모임’ 직전 김정기(38) 씨가 한국에 있는 친부모 추적 에이전트 최경록(가명) 씨에게 가격을 열배 가까이 올리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한화로 500만 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모임은 지난 6월 16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김 씨 주최로 열렸는데, 친부모 추적 성공 경험이 있는 한국인 에이전트와 네덜란드 입양인을 중개하기 위한 자리였다.
김 씨는 곧바로 서울로 화상통화를 연결했다. 김 씨가 “다들 만나서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비용을 왜 올리느냐”고 묻자 “기록이 내년이면 다 아동권리복지원으로 이관되다 보니 경찰도 입양기관도 이제 잘 안 뚫린다. 물가도 너무 올랐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날 모임에서 에이전트를 통해 친부모를 찾겠다는 의사를 밝힌 입양인만 30여 명. 모두 비용을 낸다면 에이전트에게는 약 1억 5000만 원이 전달된다. 얼굴 한 번 보지 않은 사이인데 서울과 네덜란드에서는 아슬아슬한 거래가 이뤄지기 직전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에 기댄 ‘뿌리 찾기’
해외 입양인 뿌리 찾기가 빠르게 늘고 있다. 정부나 지원 단체가 도와서가 아니다. 시기적으로 상황이 만들어졌다. 1970~80년대 해외 입양을 간 이들이 중년이 됐기 때문이다. 입양인들은 고령이 됐을 친부모와의 생전 재회를 위해 마음이 급해졌다. 아동권리보장원 국내외 입양인 입양정보공개청구 자료에 따르면 매년 1500여 건을 웃돌던 청구 건수는 지난해 2720건을 기록했다. 최근 6년간 최대치다.
사적 에이전트는 해외입양인 뿌리 찾기 최후 수단이다. 시간과 비용 언어라는 장벽은 높고 정부는 아예 손을 놓고 있다. 끝내 비합법적 사적 에이전트를 찾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수요가 늘면서 비용도 올라간다. 이젠 비용을 치러야 뿌리 찾기가 가능한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날 모임 참여 입양인들도 사적 에이전트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긴장한 표정의 진명숙(43) 씨도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그는 생후 3개월에 부산 동래구 한 주택 대문 앞에서 발견돼 3살이 되던 해 벨기에로 입양됐다. 20년간 한국을 7번 찾고 DNA 검사, 언론 등을 모두 통했지만 소득은 없었다. 지난해 마지막 한국 방문 때 한국의 입양기관은 “더 이상 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그는 “얼마가 들더라도 부모를 찾을 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고 했다.
에이전트 도움 역시 몇몇 입양인들만 이용할 수 있다. 성공 보장 없이 한국 방문부터 에이전트 접촉까지 무한 청구되는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일이다. 입양인 요한(48) 씨는 중년에 찾아온 입양 트라우마로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됐고 아들을 혼자 키우고 있는 입양인 구미영(50) 씨도 심리상담을 받으며 일을 멈췄다. 네덜란드 입양인 지원 비영리단체 아답티서클 한유근 대표는 “중년에 이른 입양인들은 다시 입양과 마주하는데, 이들에게 친부모 찾기는 원활한 일상 유지를 위한 발버둥이다”고 말했다.
■“발품이 전부”…뿌리 찾기 현실
네덜란드에서 벌어지는 입양인 친부모 추적 ‘회색시장’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취재진은 서울에서 에이전트 최 씨를 따로 만났다. 그는 한 달에 5건 이상 요청이 들어오며, 지난 20여 년간 300건 이상 추적에 성공했다고 한다. 최 씨는 “처음엔 개인적인 친분으로 도왔는데 규모가 커져 회사를 설립해 활동한다”고 설명했다.
에이전트에게도 입양인 친부모 추적은 복잡한 작업이다. 최 씨는 “입양 기록에 적힌 40~50년 전 주소를 찾아가면 행정구역도 몇 차례 바뀌었고 과거 남의 주소지를 써놓은 경우도 많아 일일이 탐문 수사를 한다. 기약없이 여러 곳을 옮겨 다녀야 하는 일이어서 말도 통하지 않는 입양인이 직접 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입양인 뿌리 찾기는 흩어진 퍼즐 조각을 맞추는 지난한 과정이다. 입양인들도 개인적으로 친부모를 찾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안다. 추적의 첫 출발인 입양 기록부터 빈칸 투성이다. 현행 입양특례법에는 입양 정보 공개 요청 시 친생부모가 정보공개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친생부모 인적사항을 제외하고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70~80년대에 해외로 입양된 경우 기록의 부재와 오기재 등으로 이 자료조차 불완전하다. 어느 자료든 친생부모의 인적 사항은 빈칸이다. 현행 제도가 입양인 뿌리 찾기에는 제약인 셈이다.
해외입양인 쉼터 뿌리의 집 김도현 대표는 “가족 찾기는 종합예술과 같다. 한 군데서 풀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더듬어보고 대화를 통해 사태를 파악하고 하나하나 실마리를 찾아가야 한다. 안될 때도 여러 차례 시도하면 찾을 확률이 높아지고 입양기관도 재방문 때마다 정보공개 수위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정부 입양 정책은 이미 붕괴”
결국 뿌리 찾기는 제도권 밖까지 나아간다. 2017년 대구지방경찰청의 장기실종수사팀 성과가 주목된다. 수사팀은 1년 6개월간 해외 입양인 16명의 친부모 추적에 성공했다. 경찰 내 해외 입양인 뿌리 찾기 TF를 결성한 최초의 팀으로 입양인 지원 사회적협동조합 ‘배냇’과 공조했다. 배냇이 부모를 찾으려는 입양인들과 경찰을 연결했고, 경찰이 수사권과 수사력을 발휘했다. 공권력이 적극적인 법 해석을 통해 입양인 뿌리 찾기에 성공한 사례다.
배냇 김유경 대표는 “경찰이 마음놓고 도와줄 수 있는 구조가 있으면 좋지만 현재 법이 막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배냇에는 한 달에 약 20건 의뢰가 꾸준히 들어오며, 지난 7년간 뿌리 찾기 지원 사례는 1250건에 달한다.
“우리는 공권력도 없는 시민단체인데 이렇게 많은 입양인이 연락이 온다는 것 자체가 현 입양인 정책의 붕괴입니다.” 김 대표의 말이다.
암스테르담(네덜란드)/글·사진=변은샘·양보원 기자 iamsam@busan.com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