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투기 학습과 공공임대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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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래 신라대 무역경제학부 교수

미국 시카고 대학의 경제학 교수였던 로버트 루카스(R.E.Lucas)는 지금부터 꼭 25년 전인 1995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많은 학문적 분야에 기여하였지만 노벨상 수상의 공로로 기록된 것은 ‘합리적 기대이론’의 발전에 대한 기여였다. 합리적 기대이론을 좀 거칠게 요약한다면 사람들이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결과를 예측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면 예전과 같은 정부 정책들은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과거 경험 비춰 결과 예측·행동하면

이전의 정부 정책 효과 거둘 수 없어

아파트 값 급등도 합리적 기대 산물

 

무조건 땅 풀어 공급 늘리기보다는

공공임대 아파트 확대 적극 활용을

좋은 위치·더 깔끔한 형태 공급돼야


이 놀라운 주장은 이후 거시경제학의 이해를 완전히 바꾸었는데, 그것은 케인스(J.M.Keynes)가 거시경제학의 체계를 제시한 지 겨우 40년이 지난 시점에 나온 것이었다. 개인으로 보면 물론 40년은 긴 시간이다. 그러나 역사적 시간으로 보면 40년은 짧다. 그런데도 40년의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엄청난 학습과 그를 통한 진화를 통해 마침내 정부 정책까지 무력화하는 결과를 가져오기에 이르렀다.

올 한 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아파트 가격 급등도 크게 보면 합리적 기대가 빚은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분명히 세입자 보호와 가격안정을 목적으로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추진하였는데, 그 결과는 역설적이게도 미친 듯한 가격 상승의 전국 확산으로 결국 정부 정책을 무력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아파트가 건설되고 국민들이 학습한 기간도 어느덧 50년이 되었다. 서울 강남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 1980년 전후였고, 부산의 대표적인 재건축 예정 아파트인 남천 삼익아파트가 지어진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이 기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슨 학습을 하였을까?

아파트 시장도 물론 주기적인 파동을 겪었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가격은 꾸준히 상승하였고, 특히 가격이 오를 조짐이면 무조건 사는 것이 이익이었다.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면 정부는 뒤늦게 허둥지둥 땅을 풀어 아파트 공급 확대를 하였는데, 이것은 가격을 낮추기는커녕 투기판을 키우는 결과를 빚어 왔다.

이러한 학습효과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정부 정책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현상이 시장에서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그 어느 때보다 투기 억제책을 강도 높게 펼치는 데도 불구하고, 젊은이들마저 영혼까지 끌어모아 아파트를 사겠다고 달려드는 것은 학습효과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다시 노벨상을 받았던 루카스로 돌아가 보자. 학자로서는 대단했지만, 연구에만 매달렸던 루카스는 아내로부터 이혼을 당했다. 이혼 당시 루카스의 아내는 이혼 후 노벨상을 받게 된다면 상금을 나눈다는 놀랄만한 통찰력을 가진 조항을 넣었는데, 이 조항은 훗날 현실이 되었다. 합리적 기대가설은 루카스가 만들었지만, 생활에서 그 이론을 더 잘 적용한 것은 그의 부인이었다.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 보자. 합리적 기대이론이 강력히 시사하는 것은 정부 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그 정책의 결과를 익히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 루카스의 부인처럼 사람들이 정책의 결과를 충분히 예상한다면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아파트 가격을 잡는 방법으로 이제까지 해 왔듯이 무조건 땅을 풀어 공급을 늘리는 것은 답이 아니다.

그린벨트를 풀어 새롭게 땅을 제공하더라도 그것은 사기업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더 넓은 투기장이 될 뿐이다. 실제로 그동안 수많은 아파트를 공급하였지만, 그 아파트는 모두 돈 있는 사람들의 수중으로 들어가 버리고, 집 없는 사람들의 고통은 전혀 경감되지 않았다. 주택 공급량에 상관없이 주택 사정은 오히려 더 악화하였다.

아파트 가격의 급등으로 정권의 안정까지 위협받게 되면서 결국 공공임대 아파트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공공임대주택 이야기가 나오자 평수를 가지고 희화화하려는 방해꾼들이 없지 않지만, 사실 공공임대 아파트 확대는 오래전부터 제안된 좋은 해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대주택은 집을 지어 팔아야 하는 사기업들의 벽을 넘지 못해, 이제까지 영세아파트에서만 명맥을 이어왔다.

새로 공급될 임대아파트는 물론 영세아파트를 답습해서는 안 될 것이다. 좋은 위치에 더 넓고 깔끔한 형태로 공급되어야 한다. 공공임대 아파트는 새로운 정책으로 그 자체만으로도 효과가 작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임대주택은 기존에 사기업들이 공급하는 아파트 시장과는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효과를 관리하기도 좋다. 젊은이들이 기득권층의 시장 횡포에서 벗어나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투기 학습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위축되지 않도록, 잘 지켜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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