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미혜의 젠더렌즈] 정치권의 성폭력은 일상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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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대 상담심리복지학과 교수

또 터졌다. 올 4월이면 서울과 부산, 우리나라 1, 2위의 도시에서 일어났던 수장의 성폭력 문제로 보궐선거가 시행된다. 그런데 성 평등을 주요 가치로 표방하고 있는 한 정당의 대표가 같은 정당의 의원을 성추행했다는 공식 발표가 얼마 전에 나온 것이다. 그 후폭풍이 얼마나 강한지 해당 정당의 존재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이 정도 되면 굳이 증거를 대지 않더라도 정치권에서 성폭력은 매우 일상화되어 있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도대체 왜 이럴까?


가부장제 성 불평등 문화 초래

여성의 문제는 곧 인간의 문제

양성 평등 사회적 유대감 절실


여기에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통용되고 있는 성 문화가 관습처럼 퍼져 있기 때문이다. 성폭력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지던 초기에는 그 원인을 가해자의 부도덕이나 일탈 행위로 보거나 피해자의 부주의 또는 유발 행위로 보는 개별적인 접근 방식에서 찾고자 하였다.

그러나 여성학자들은 성폭력 피해자가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을 들어 성폭력이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여성을 통제하는 권력의 한 형태이며 이것이 사회에 의해 정당화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성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을 여성의 성을 지배하고 구속하는 사회문화적인 이데올로기와 한국 사회의 상업자본주의의 양산으로 보고 이 두 가지 요인이 서로 상승 작용을 하며 왜곡된 성 문화를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을 묵인하도록 만드는 요인은 남성주의적 성 문화와 연관이 있으므로 그 특징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선 가부장제는 남녀 간의 성 관계를 불평등하게 정착시켰다. 즉, 남성은 결혼을 통해 아내의 성을 소유하는 권리를 가지게 되었는데 여기서부터 주종적인 성 관계가 당연시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수용되는 성 문화가 형성되었다.

또한 보편적인 성 역할 규범에 의하여 우리 사회에서 적극성과 소극성은 각각 남성성과 여성성을 대변하며 이성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때문에 성폭력을 행한 남성이나 당한 여성은 이를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남성다운 관심과 사랑의 표현으로 착각하게 된다.

또한 가부장제의 이중적인 성 윤리는 성매매를 남성의 성을 충족시키는 필요악으로 묵인하였다. 잘못된 성 윤리에 의해 사회화된 남성은 인격적인 교감 없이 성을 매매하는 행위가 성 본능의 충족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마지막으로 성 산업은 쾌락주의를 유포하는 동시에 남성성을 과장하는 왜곡된 문화를 고착시켰다. 청소년이 성에 관한 구체적인 지식을 전수받는 것은 주로 음란물을 통해서이다. 이런 음란물은 폭력적인 성행위를 마치 일상적인 것처럼 포장하기 때문에 올바른 성 윤리를 갖지 못한 청소년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결국 왜곡된 성 지식은 청소년에게 성폭력과 성행위 사이의 경계조차 구분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다시 한번 성폭력의 개념을 살펴보자. 성폭력은 ‘상대방의 동의 없이 강제적으로 성적 행위(언어 포함)를 하거나 성행위를 하도록 강요, 위압하는 행위’이며 그 범위는 성을 매개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모든 신체적, 정신적, 언어적 폭력을 포함한다. 따라서 성폭력은 강간, 성추행, 성 학대, 성희롱, 성기 노출, 음란 전화 등 피해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 행위이다.

아무렇지 않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성폭력은 우리 사회의 왜곡된 성 문화와 성 불평등에서 비롯된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취약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폭력의 희생자가 되기 쉽다. 직장에서 남성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여성은 자신이 당한 폭력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약화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수동적인 여성일수록 성폭력에 대한 인식도가 낮을 뿐 아니라 이를 분명하게 거부하지 못하고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 주체로 살아가는 성 문화를 확립하려면 사회적인 자각과 대중매체를 통해 성숙한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 사회 속의 개개인이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생각할 때, 그리고 여성 문제를 인간 문제로 생각할 때 모든 인간의 삶의 질도 향상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복지국가의 기본은 약자를 먼저 보호하고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지원책을 제공하는 데 있다. 성폭력특별법이 여성에 대한 폭력의 예방이라는 일차적인 목적을 달성하고 다음으로 피해자 보호의 실효를 거두려면 가정, 지역사회, 나아가 국가 전체에서 사회적 유대감이 형성되어야 한다.

결국 인간의 존엄성과 양성 평등에 대한 사회적 유대감이 조성되어야만 여성과 관련된 특별법도 그 상징성을 초월하여 그 몫을 다하게 될 것이고 궁극적으로 폐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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