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20. 하관이 빠지면
이진원 교열부장
‘김혜수는 …트레이드 마크인 통통한 볼살이 사라지고 하관이 쑥 빠져 달라진 얼굴라인이 궁금증을 모았다.’
어느 신문 기산데, ‘하관이 빠져’라는 표현에 눈길이 간다.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말이라 어떤 뜻인지 궁금해할 이도 많을 듯.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보자.
*하관(下관): 광대뼈를 중심으로 얼굴의 아래쪽 턱 부분.(볼수록 노인은 귀골이었다. 넓은 이마에 하관이 든든하고 콧날이 우뚝하다.〈최인훈, 회색인〉/갸름하니 하관이 빨아 약간 나온 듯싶은 광대뼈, 그 위로 길게 팬 눈초리를 지나….〈채만식, 냉동어〉)
즉, ‘관(관)’이 광대뼈이니 하관은 ‘광대뼈 아래’인 것. 한데, 보기글에 나온 ‘하관이 빨아’를 눈여겨봐야 한다. ‘빨아’로 활용하니 ‘빨다’가 으뜸꼴(기본형)이라는 얘기. 다시 표준사전을 보자.
*빨다: (형용사)끝이 차차 가늘어져 뾰족하다.(주걱턱이란 대개 턱이 빨고 끝이 밖으로 굽은 것을 말한다.)
이러니 턱이 뾰족한 것을 일러 ‘하관이 빨다’라 하는 것. 그러면, ‘하관이 빠지다’라는 말은 맞는 말일까. 하지만, 표준사전에서 동사 ‘빠지다’ 뜻풀이를 봐도 ‘박힌 물건이 제자리에서 나오다(머리카락이 빠졌다), 그릇이나 신발 따위의 밑바닥이 떨어져 나가다(구두 밑창이 빠지다), 살이 여위다(얼굴 살이 쪽 빠졌다), 일정한 곳에서 다른 데로 벗어나다(샛길로 빠지다), 생김새가 미끈하게 균형이 잡히다(다리가 미끈하게 빠지다), 물이나 구덩이 따위 속으로 떨어져 잠기거나 잠겨 들어가다(수렁에 빠지다)’ 정도가 있을 뿐, 턱이 뾰족한 걸 가리키는 뜻은 없다. 하긴, 이런 걸 떠나서 생각더라도 동사가 턱을, 얼굴을, 우리 몸을 수식한다는 게 말이 될 리가 없다. ‘하관이 빠지다’로 쓰면 안 된다는 얘기다. 한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표준사전을 보자.
*갸름하다: 보기 좋을 정도로 조금 가늘고 긴 듯하다.(…/그 사람은 하관이 갸름하게 빠졌다./갸름하게 선이 고운 아낙의 옆얼굴이 월광(月光)을 받아….
*쪽: …윤곽이 매끈하게 이어지는 모양.(하관이 쪽 빠진 갸름한 얼굴./앙상하지만은 않은 무릎과 쪽 빠진 종아리는 보기 좋았다….
이처럼,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사전조차 ‘하관이 빠지다’로 쓰는 게 현실이다.
‘코는 조각처럼 오뚝하고 눈꼬리는 다소 처져 있지만 날카로우며 빠른 하관과 숱 적은 수염이 그 깐깐한 성품을 보여준다.’
조선 영조를 묘사한 이 기사에 나온 ‘빠른 하관’ 역시 옳은 표현이 아니다. 이 말이 성립하려면 ‘느린 하관’도 있어야 하는데, 이것들이 대체 뭘 가리키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관은 그냥 빨 뿐이다.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