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부산 밸리’ 큰 그림 그려야
김대래 신라대 글로벌경제학과 명예교수
오랫동안 부산의 인구통계를 대해 왔지만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막상 부산을 떠나는 것을 제대로 실감한 것은 재작년 가을이었다. 필자를 포함하여 자주 만나던 5명의 고교 동기생들은 아주 젊은 나이에 부산에 와서 40여 년 가까이 부산을 고향처럼 생각하며 살았다. 그리고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나이가 더 들어서도 부산에서 함께 시간을 보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재작년 가을, 그야말로 부산사람이 다 된, 두 친구가 부산을 떠났다. 송별식을 하는데 떠나는 두 친구의 얘기가 거의 같았다. 이제 퇴직을 하였고, 아이들이 서울 쪽에 있어서 손주도 봐줄 겸해서 부산을 떠나기로 했다는 것이다. 서울 조금 못 가 판교 인근으로 이사한 것을 보면 자식들이 그 부근에서 일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부산에 남아 있는 친구들은 자녀가 부산 인근에 살고 있거나, 아직 돌보아 줄 손주가 없는 친구들이었다.
부산경제 위기론 나온 지 40여 년
이젠 위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
시·대학·기업, 틀에 갇혀선 안 돼
이제 곧 부산은 ‘초고령사회’ 진입
도시 활력·혁신역량 더 높여야 해
‘밸리’ 같은 집적지 구상 검토할 만
한 달 전 부산경실련이 개최한 ‘4차 산업혁명 시대 부산 청년들의 일자리’라는 주제의 세미나가 있었다. 부산 청년 364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분석한 자료에는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의 답답함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4차 산업혁명 관련 일자리를 찾아 부산을 떠날 수도 있다는 응답자 10명 가운데 6명이 수도권에 가고 싶다고 하였고, 3명은 어느 지역이라도 일자리가 있는 곳이면 갈 수 있다는 응답을 보였다. 물론 부산에 적절한 일자리가 있으면 부산을 떠나지 않을 젊은이들이다.
1980년대 초부터 부산경제 위기론이 나오기 시작하였는데 그로부터 어언 40년이 흘렀다. 이제 더 이상 위기 얘기는 하지 않는다. 그냥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7월 부산시가 발표한 인구정책 기본 계획이 그런 인식을 잘 보여 준다. 이제 허황된 인구 목표 따위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대신 앞으로 더 작아질 ‘축소도시’에 대한 대응으로 정책의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
도시가 작아져도 활력은 있어야 한다. 부산시가 미래의 인구 대책으로 도시 활력에 중점을 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바로 이 ‘활력’이 문제다. 활력이 제대로 있었다면 부산의 인구가 이렇게까지 급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의 성장을 가리켜 흔히 혁신성장이라고 하는데, 얼마 전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혁신성장역량 지표에서 부산은 광역시 가운데 유일하게 혁신역량 취약형으로 분류되었다. 부산이 광역시 가운데 최초로 다음 달 초고령사회로 접어드는 것으로 예정된 것도 이러한 낮은 혁신역량과 무관하지 않다.
교육과 연구 역량이 떨어지고 창업과 신산업이 활발하지 않은 것이 혁신역량이 취약한 원인이다. 이것을 뒤집어 보면 부산이 새롭게 활력을 찾고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혁신역량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 요즘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도 혁신산업들이다. 실제로 근년에 들어와 벤처·스타트업 기업에서의 고용 창출이 급증하고 있으며, 이들 산업으로 기존산업에 있던 인력의 대이동이 일어나고 있다.
혁신역량의 핵심인 교육과 연구 그리고 창업과 신산업은 분리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과도한 집중으로 너무나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그중에서도 판교와 같은 지역으로 기업과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집적의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새로운 성장 지역들이 기존의 산업단지 이름 대신에 ‘밸리’와 같은 집적지를 표방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부산경제를 살리겠다는 논의는 그동안 많이 나왔지만, 정책들은 서로 분리되어 있고 작은 것에 매몰되어 있는 경향이 있다. 반면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집적지인 ‘부산 밸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구상은 한 번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한때 부산에서도 가야 밸리와 같은 이름을 붙인 집적지에 관한 논의가 있었지만 제대로 논의도 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었다.
지역이 위기인 이때 대학도 위기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아직은 학생 모집에서 미달 사태를 보이지 않는 국립대학도 사실 위기에 내몰리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학생을 채운다고 대학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위기에 처한 부산시와 지역의 대학 그리고 산업 격변기를 맞은 지역의 기업들 모두 자신들의 틀에 갇혀 안주해서는 안 된다.
함께 힘을 모아 부산 회생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국비를 접목시키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내년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부산을 방문하는 후보자들에게 부산은 어떤 메시지를 가지고 설득할 것인가? 늘 그러했듯이 북항이나 가덕도 앞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사진만 찍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다음 달이면 부산은 전국에서 유일한 초고령 광역시가 된다. 그렇다고 생각까지 늙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