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21. 번번히와 번번이
이진원 교열부장
“사카라!”
참으라는 경상도 말인데 으뜸꼴은 ‘삭후다’쯤 될 터. 한데, 이 말의 표준어는 ‘삭히다’일까, ‘삭이다’일까.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보자.
*삭히다: 김치나 젓갈 따위의 음식물을 발효시켜 맛이 들게 하다. ‘삭다’의 사동사.(밥을 삭혀 끓인 감주./김치를 삭히다….)
*삭이다: ①먹은 음식물이 소화되게 하다(돌도 삭이다.) ②긴장이나 화가 풀려 마음이 가라앉게 하다(분을 삭이다.) ③기침이나 가래 따위가 잠잠해지거나 가라앉게 하다(기침을 삭이다).
이러니 ‘삭이다 ②’가 바로 저런 상황에서 쓸 말. ‘-이-/-히-’는 둘 다 사동접사이지만, 이렇게 잘 구별해서 써야 한다. 부사화 접미사 ‘-이/-히’도 마찬가지.
‘세종은 아들이 지어바친 〈석보상절〉을 꼼꼼이 읽고 각 2구절에 따라 석가모니의 공덕을 찬양한….’
이 기사에 나온 ‘꼼꼼이’는 우리말에 없는 단어다. ‘꼼꼼이/꼼꼼히’처럼 부사의 끝 음절이 ‘이’로도 나고 ‘히’로도 날 때는 ‘-히’로 적는다는 한글 맞춤법 제51항에 따라 ‘꼼꼼히’로 쓰기 때문이다. 반면, ‘학교에서 또 다른 차별은 없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에서 ‘곰곰히’는 ‘곰곰이’로 적는다.(‘곰곰’도 괜찮다.)
‘대부분 내가 어릴 때부터 간간히 들어왔던 것이어서 거의 다 아는 이야기였다.’
어느 소설에서 본 문장인데, 이 ‘간간히’도 옳은 말이 아니다. 표준사전을 보자.
*간간히: 입맛 당기게 약간 짠 듯이.(간간히 조리다./음식은 간간히 조리해야 맛이 난다.)
즉, 저 문장은 ‘어릴 때부터 짭짤하게 들었다’는 뜻이 아니므로, ‘간간히’가 적절하지 않은 것. 저 자리에 와야 할 말은 ‘가끔씩’이라는 뜻인 ‘간간이’다.
〈번번히 빗나간 야투, BNK 박신자컵 첫 승 실패〉
한국여자프로농구를 다룬 어느 신문 기사 제목인데, 여기선 ‘번번히’가 엉뚱하다. 표준사전을 보자.
*번번히: ①구김살이나 울퉁불퉁한 데가 없이 펀펀하고 번듯하게.(농지 정리를 하여 논 전체를 번번히 골랐다.) ②생김새가 음전하고 미끈하게. ③물건 따위가 멀끔하여 보기도 괜찮고 제법 쓸 만하게. ④지체가 제법 높게.
이 뜻풀이 가운데 어느 것도 저 제목에 어울리지 않는다. 저 자리에는 ‘번번이’를 써야 했던 것.
*번번이: 매 때마다.(약속을 번번이 어기다./시험에 번번이 낙방하다….)
한데, 이 표준사전 뜻풀이는 ‘매’와 ‘마다’가 중복이어서, ‘매번’ 정도면 좋았을 듯.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