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64. 부산미술 ‘새로운 형상’의 역동성, 김미애 ‘매치’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김미애(1963~ )는 부산미술의 주요 흐름으로 파악되는 1980년대 형상미술 계열에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친 작가이다. 그는 부산미술의 역사를 돌아볼 때에 반드시 언급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부산대 대학원 졸업 후 작가는 미국으로 건너가 프랫 아트 인스티튜트를 졸업했다. 초기 형상미술 계열의 활동에서 나타난 화려한 색감의 사용이나 표현주의적 양식은 미국 유학 시절을 거치며 점차 사그라든다. 이후 작업에서는 물질성에 초점을 둔 입체 작업을 선보인다.

1988년 작 ‘매치’는 부산에서 활발하게 일어난 형상미술 움직임의 주요 시기에 제작된 작품이다. 1980년대 격변하는 정치·사회적 흐름 속에서 작가들은 자신만의 시각언어로 시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혹은 시대의 목소리를 담아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민중미술이 주류였던 중앙화단과 구분되는 부산화단의 행보이다. 1980년대 부산미술은 소시민의 일상과 개인의 일상에 주목했다. 개인의 이야기 속에서 시대의 갈등을 포착해냈으며, 이를 은유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김 작가의 작업 역시 시대적 상황을 마주한 개인의 상황을 은유한 것으로 읽어낼 수 있다.

묘한 감수성을 자극하는 노란 색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는 기계는 시공간을 유추할 수 없는 제3의 공간으로 보인다.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기계에서 시선을 돌리면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성별이나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사람들이 기계와 한 몸이 되어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의 기계화라는 디스토피아를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일러스트적 감수성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 작품은 전자오락실을 배경으로 한다. 기계 속에 편입되어 마치 게임 속 말이 된 듯한 인간들은 경쟁 속에서 기계적으로 소모되고 있는 시대의 인물상을 은유적으로 표상하는 듯하다.

알 수 없는 게임과 곡예를 이어가는 인물들이 놓인 극적인 상황은 화면 특유의 질감에 의해 강조된다. 매끈한 듯하면서도 휘갈긴 듯한 화면의 질감은 물감을 닦아내고 문지르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김 작가는 이러한 터치가 추상회화의 터치와는 사뭇 다른 “지껄이듯 내뱉는 자전적 소음”이라고 했다. 즉흥적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디테일이나 인물의 묘사는 마치 게임에서 순발력을 발휘하여 상대를 이길 타이밍을 엿보는 듯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혼란의 시대를 마주한 젊은 작가의 고민과 갈등 그리고 욕망이 고스란히 담긴, 실존 그 자체의 이야기를 화면에 쏟아냈기 때문이 아닐까?

김경미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