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 유지” vs “레드라인”… 미·중 정상, 대만 문제 격돌
바이든-시진핑, 첫 대면 정상회담
북한 문제도 해결책 없이 평행선
경제 패권·인권 문제도 입장 차
대화 채널 복구 등은 성과로 평가
14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은 대만·북핵 문제를 둘러싼 양측의 양보 없는 입장을 재확인한 자리였다. 끊어진 대화 채널이 복구되는 등 성과도 있었지만, 가속하는 신냉전 구도에 뚜렷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저녁 3시간여 진행된 첫 대면회담에서 대만 문제를 두고 날 선 신경전을 벌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은 변함이 없다면서도 “일방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대만에 대한 중국의 강압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겨냥한 것이다.
이에 시 주석은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 이익 중에서도 핵심”이라면서 “중·미 관계에서 넘으면 안 되는 첫 번째 레드라인”이라고 정면 반박했다. 또 “대만을 중국에서 분리하려는 사람은 중국의 근본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이전보다 발언 수위는 다소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 주석은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직전인 지난 7월 말 바이든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불장난하면 반드시 불에 타 죽는다”며 강하게 압박했다. 지난해 11월 화상회담 때도 이런 표현을 썼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대면회담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려는 임박한 시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기대 섞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첫 대면에 따른 ‘예의’로 보는 시각도 적잖아 대만 문제는 여전히 양국 간 최대 화약고가 될 전망이다. 미 정보기관과 전문가들은 중국의 대만 침공이 유력한 시점으로 2027년을 꼽고 있어 갈수록 정략적 대결은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두 정상은 대북 대응을 두고도 평행선을 달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북한이 책임 있는 행동을 하도록 촉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회담 이후 밝혔다. 그러면서도 중국이 이 같은 북한의 행위를 제어할지 확신하기 어렵다며 추가적인 방어행위를 취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최근 북한의 잇단 탄도미사일 도발과 핵실험 움직임에 중국의 개입을 요구했지만, 동의를 얻지 못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밖에 두 정상은 경제 패권과 인권 문제를 두고도 근본적인 입장 차이를 보였다. 시 주석은 미국이 핵심 동맹국 위주로 공급망을 재편하면서 중국을 배제하는 ‘프렌드쇼어링’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시 주석은 이를 “탄압과 봉쇄” “과학·경제·무역의 정치화” 등으로 규정했다.
반대로 바이든 대통령은 시 주석 앞에서 신장 위구르족, 티베트 등의 인권 문제를 직접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인권 문제를 내정간섭으로 보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날 회담 직전 미국 기자단의 ABC뉴스 프로듀서 몰리 네이글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회담에서 인권 문제를 꺼낼 거냐’라고 질문하자 중국 측 관계자가 네이글의 백팩을 붙잡아 당기는 일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를 본 백악관 직원들이 네이글에게 손대지 말라며 경고하면서 사건이 일단락됐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양측 소통 채널이 재개된다는 점은 성과로 평가받는다. 양측은 기후변화, 국제 식량 안보 등에 대해서는 대화를 지속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이 이를 위해 내년 초 중국을 방문하기로 했다. 앞서 양국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직후 기후변화 등 8개 분야에 대한 대화를 중단했다. 첫 대면 회담이 성사된 데 이어 외교 채널이 복구된다는 점에서 대만 문제로 격화됐던 양국 간 표면적인 긴장은 일단 완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백악관 발표에 따르면 또 하나의 주요 성과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와 대통령과 가까운 시 주석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핵 사용 반대에 동의했다는 점이다. 실제 중국 관영매체들은 회담 이후 전 세계에 감돌았던 긴장감이 완화됐다고 평가했으며, 중화권 증시가 강세를 보였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