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를 키우며 모순을 드러내다 [전시를 듣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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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슬 개인전 ‘단풍을 볼 수…’
15일까지 오픈스페이스 배
제주서 3년간 잡초재배프로젝트
음악가·소설가·서예가와 협업도
우리 주변 ‘모순’ 드러내는 작업

이다슬 '초충도'. 하찮은 잡초와 벌레 이미지가 서예 대가의 글과 만나 병풍이 됐다. 오금아 기자 이다슬 '초충도'. 하찮은 잡초와 벌레 이미지가 서예 대가의 글과 만나 병풍이 됐다. 오금아 기자

쓸모없는 잡초를 정성 들여 키우는 모순.

이다슬 작가는 3년간 잡초를 키웠다. 오픈스페이스 배에서 열리는 개인전 ‘단풍을 볼 수 없는 청년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작가가 정성껏 재배한 잡초를 만날 수 있다. 보랏빛 식물재배등 아래에서 잡초들은 영양제를 맞으며 자라고 있고, 잡초 주위로 벌레들이 날고 있다.

이 작가는 제주에서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에 진학한 작가는 사진에 관심을 가졌다. 한예종 전문사(석사) 과정을 마친 작가는 제주로 갔다. “지역이 바뀌니 고향이라고 해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어머니 밭을 인수해서 참깨 농사를 짓게 됐죠.” 이 작가는 농사를 통해 잡초를 다시 봤다. 매일이 잡초와의 전쟁이었고, 초보 농사꾼은 겨우 소주병 3병 분량의 참기름만을 얻었다. 참깨밭을 갈아엎고 아로니아를 심었지만 잡초와의 전쟁은 계속됐다.

이다슬 '종달새 날아오르면 나를 꼬옥 안아주세요 23-1-D-3'. 이다슬 제공 이다슬 '종달새 날아오르면 나를 꼬옥 안아주세요 23-1-D-3'. 이다슬 제공
이다슬 작가는 오픈스페이스 배 4층에 자신이 3년간 키운 잡초들을 설치했다. 오금아 기자 이다슬 작가는 오픈스페이스 배 4층에 자신이 3년간 키운 잡초들을 설치했다. 오금아 기자

이 작가는 잡초를 제거하는 자신의 행위에서 ‘개발을 위해 파괴되어 가는 제주의 모습’을 발견했다. 제주 자연을 파괴하는 모순 같은 일이 일상에 있었다. 작가 이다슬은 ‘잡초를 그대로 두거나 오히려 적극적으로 키우기’에 도전했다. “농부 입장에서는 잡초를 재배하고, 예술인의 입장에서는 잡초를 재배한 거죠. 같은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모순된 행동을 하는 것으로, 잡초를 키우며 스스로 얼마나 모순에 빠질 수 있는지를 연구했어요.”

정성을 다하니 단년생이던 잡초의 생명이 2년, 3년 살아남는 다년생으로 연장됐다. “잡초가 잡초가 아닌 아이러니한 풍경이 펼쳐졌어요.” 잡초를 키우기 위해 실내에 식물재배등을 켜놓았더니 ‘대마초를 재배한다’는 신고가 들어가기도 했다. 작가는 이 경험을 작품 ‘당신은 아무 잘못도 없어요’로 풀어냈다. 전시장에서 식물재배등 불빛이 비치는 문에 가까이 가면 경고등이 울린다.

이다슬 작가의 2022 세계문화유산축전 불의 숨길 아트프로젝트 참가작 '죽은 개망초와 망초를 위한 1,000개의 식물 영양제'. 이다슬 제공 이다슬 작가의 2022 세계문화유산축전 불의 숨길 아트프로젝트 참가작 '죽은 개망초와 망초를 위한 1,000개의 식물 영양제'. 이다슬 제공
오픈스페이스 배 옥상에 있는 식물에 이다슬 작가가 링거 형태의 영양제를 설치했다. 오금아 기자 오픈스페이스 배 옥상에 있는 식물에 이다슬 작가가 링거 형태의 영양제를 설치했다. 오금아 기자

이 작가는 2022 세계문화유산축전 불의 숨길 아트프로젝트에서 모래 위 죽어가는 잡초에 1000여 개의 영양제를 투여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자연이 파괴되는 모습을 사진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잡초 재배 행위를 통해 왜 저렇게 키우는지 관람객들이 질문하게 만들 수도 있는 거죠.” 이번 전시에서는 잡초 재배 일지도 볼 수 있다. 분초 단위까지 기록한 재배 일지에서는 잡초를 키우는 모순된 작업 과정들이 보인다.

‘2022년 12월 19일 월요일 01:53:24, 화장실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녀석을 촬영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배양실에서 태어난 나방을 찍은 흑백 사진이 아름답다. “사진에서 컬러를 빼서 형태에 더 집중하게 했어요. 색을 빼니 나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방 형태를 미학적으로 보게 되는 거죠.” 이 작가는 전시 제목 속 ‘단풍을 볼 수 없는 청년’은 자신의 이야기라고 했다. “‘적록색약’이거든요. 어릴 때 사람들이 단풍이 이쁘다고 하면 저도 거짓으로 ‘이쁘다’고 했어요. 남들과 다른 눈으로 보기 때문에 풍경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이다슬 '종달새 날아오르면 나를 꼬옥 안아주세요 219-B-1'. 이다슬 제공 이다슬 '종달새 날아오르면 나를 꼬옥 안아주세요 219-B-1'. 이다슬 제공
이다슬 작가가 재배를 통해 수집한 잡초 씨앗. 오금아 기자 이다슬 작가가 재배를 통해 수집한 잡초 씨앗. 오금아 기자

이 작가는 잡초와 벌레 이미지를 한지에 인쇄해 초충도 병풍도 만들었다. 초충도에는 ‘미소체’로 유명한 현병찬 서예가가 글씨를 썼다. “하찮은 벌레와 잡초 이미지에 대가의 글씨를 입히는 모순적인 행위, 쓸모없는 행위에 극한의 노력과 정성을 들이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어요.” 달팽이가 타고 오르지 못하게 만든 잡초 모종판 전용 트레이, 잡초를 위한 샹들리에까지 작가는 ‘쓸모없는 짓’으로 일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모순’을 드러낸다.

전시공간 4층에는 ‘3년생 잡초’들이 아완 음악가가 잡초를 위해 만든 음악을 들으며 계속 자라고 있다. 오픈스페이스 배 맞은편에 위치한 별관에는 이정임 소설가와 협업한 작품 ‘우리들의 밝은 미래’가 전시되어 있다. 이다슬 작가의 작품을 보고 쓴 소설의 문구가 조명에 비쳐 어두운 동광동 골목길을 비춘다. 조명은 SNS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기증받은 것이다.

이다슬 작가가 이정임 소설가와 협업한 작품 '우리들의 밝은 미래'. 오픈스페이스배 제공 이다슬 작가가 이정임 소설가와 협업한 작품 '우리들의 밝은 미래'. 오픈스페이스배 제공

이 작가에게 이번 전시는 ‘잡초재배프로젝트’의 마지막 여정이다. 3월 18일 자 마지막 잡초 재배 일지에 이 작가는 ‘녀석(잡초)들이 가장 아름다웠을 순간을 모두 사진으로 남겨 놨기 때문에 슬프지만 애써 괜찮다’고 썼다. 그는 전시가 끝나면 잡초들을 해가 잘 드는 정원에 모두 심어줄 계획이다. 전시는 오픈스페이스 배(부산 중구 동광길 43)에서 15일까지 열리며, 오후 1시부터 8시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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