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숨 쉬는 그릇, 옹기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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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6월 4일 자 〈동아일보〉에 이런 요지의 기사가 났다. ‘남자 일곱 명이 옹기 장사하는 시골 여자를 방에 가두고 성폭행했다.’ 피해자는 스무 살의 앳된 아낙이었다. 남편이 있었지만 생활고 때문에 직접 장사에 나섰다가 몹쓸 짓을 당한 것이었다. 식민 지배를 받는 민중들의 피폐한 삶, 사회 약자인 여성으로서 아픔을 겪었던 애틋한 사연이 이 스토리에 녹아 있다. 여인의 등에 업혀 기구한 광경을 다 지켜봤던 것이 바로 옹기다. 조선의 가정에 없어서는 안 될 옹기는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그릇이었다.

옹기(甕器)는 도자기의 일종이다. 도자기는 도기와 자기를 합친 말이다. 도기(陶器)는 도토(陶土·진흙)로 만든 질그릇을 이르는데, 보통 유약을 바르고 구운 큰 독 모양의 도기를 옹기라 한다. 자기(瓷器)는 자토(瓷土)로 만든다. 자토는 주로 돌가루인데 점력이 있는 흙을 일부 섞기도 한다. 도기는 굽는 온도가 1200도 이상이면 고온을 못 견뎌 무너지고, 자기는 1200도를 넘겨야 그릇을 굳힐 수 있다. 둘은 완전히 다른 그릇이다.(윤용이 〈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

그동안 옹기를 비롯한 질그릇은 예술성을 자랑하는 청자나 백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한 대접을 받은 바가 없지 않다. 장식용, 관상용인 자기와 다르게 실생활의 필요로 쓰였던 물건이라서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우리 민초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데 모자람이 없는 것이다. 거기에는 꾸밈없는 아름다움과 평화로움, 솔직함이 독특한 색감에 녹아 있다.

이런 옹기가 다시금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다. 최근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가 김치의 맛을 내는 전통 발효 방식의 과학적 원리를 조명하면서 김치를 ‘슈퍼 푸드’라고 칭송했다. 신문은 미생물 생장의 최적 환경을 만드는 옹기에 주목했다. 땅속에 묻히는 옹기 안팎에는 미세한 구멍들이 무수히 있는데 이게 김치 속에 있는 유산균이 이산화탄소를 밖으로 숨 쉬듯 내뿜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때마침 옹기마을과 옹기박물관이 있는 울산에서 ‘옹기축제’(5월 5~7일)가 4년 만에 재개된다고 한다. 오는 14~19일에는 ‘제10회 대한민국 옹기공모전’도 열린다. 울주군 외고산 옹기마을은 국내 최대의 옹기 집산지인 만큼 이를 알리고 옹기축제도 홍보하기 위한 취지다. K컬처의 또 하나의 콘텐츠로서 우리 옹기문화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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