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독사 예방 개정법’ 이대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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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고독사 현장을 처음 본 후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형사인 내 손으로 ‘고독사’라는 괴물을 없애 버리겠다는 각오로 이 문제를 파고들고 있다. 지난 2월 <고독사는 사회적 타살입니다>를 출간한 뒤 사람들은 나를 ‘대한민국 1호 고독사 경찰관’으로 불러준다. 고마운 일이지만 고독사 문제를 생각하면 힘에 겨울 때가 많다.

지난 6월 13일 자로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일부 개정되어 가장 중요한 대목인 고독사의 정의가 개정됐다.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에서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사회적 고립 상태로 생활하던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법 개정의 취지는 고독사 예방법을 더 넓게 해석해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좋은 뜻이 그대로 반영되지는 않을 것 같다. 고독사 예방 개정법의 ‘사회적 고립 상태로 생활하다 임종을 맞았다’라는 부분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아서이다.

고독사 예방법 제4조 2항에 따르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고독사 현황 파악, 고독사 예방 및 대응 등 각 단계에 필요한 정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라고 분명하게 되어 있다. 그 지역에 맞는 맞춤형 고독사 예방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황 파악이 우선이다. 현황 파악을 하지 않고 정책을 집행하는 것은 보여주기식 정책일 뿐이다. 그래서 고독사 예방은 통계 작성부터 시작해야 한다.

또 고독사의 정의를 확립하는 것도 급선무다. 고독사 정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망 후 며칠이 지난 후에 발견되는 죽음을 고독사로 보느냐이다. 중앙 부서와 전문가들이 모여서 사망 후 며칠이 지난 후에 발견되는 죽음이 우리나라 정서와 사회 변화에 맞는지 판단해 고독사의 정의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아직 고독사에 대한 정의가 없어서 기관마다 서로 며칠이 지난 죽음을 고독사로 할지 다투고 있는데,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일본에는 전국 수준의 자료가 존재하지 않고, 일선 행정 기관에서만 관리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사회적 고립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다. 고독사로 추정되는 사체를 대상으로 나이, 학력, 혼인, 취업 상태, 거주 상태, 생활 여건, 건강 상태, 가족과 이웃 간의 교류 상태 등을 확인하면 된다. 하지만 법과 조례 등에 아무리 ‘고독사 현황 파악’을 명시해도 보건복지부, 광역지자체, 구청, 동사무소 어느 곳에서도 현장에 나오지 않는다. 사회적 고립 상태를 확인하지 않으면 ‘고독사 제로’ 부산이 된다. 언젠가 부산시 한 관계자는 “부산은 노인이 너무 많아 어떠한 고독사 예방책을 내놓아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내 생각은 다르다. 노인이 많으면 그만큼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인력이 많은 것이다. 고독사 예방에 필요한 것은 로봇 도우미와 같은 기술력이 아니라 인력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부산만큼 고독사 예방하기 좋은 도시는 없다. 노인을 고독사의 대상자로만 생각하지 말고 고독사의 관리자로 생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대개 경제적 빈곤이 노인 고독사의 원인이라고 하지만 나는 가족의 붕괴로 인한 외로움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지자체는 ‘고독사 현장 실사팀’을 만들어 지속해서 사회적 고립 상태 여부를 파악해야 한다. 공무원들이 나가서 고독사 예비군인 65세 이상 홀로 거주자, 1인 가구, 무연고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나온 자료를 중앙 부서와 공유하여 그 지역에 맞는 맞춤형 고독사 예방책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는 국민이 마지막까지 편안하게 살다가 죽을 수 있게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고독사 예방을 위한 1단계는 무조건 ‘현장’이다.

권종호 부산 영도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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