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춤 지속가능한 발전 위해 사회적 약자 인식 점검 필요”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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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영남춤학회 학술대회
‘한국의 탈춤’ 영남 관점서 조명

장애 인식 문제·성차별적 시선
현대 문화콘텐츠로 치명적 약점
“탈춤 현대화 작업 반드시 필요”

지난 4일 오후 국립부산국악원 예지당에서 열린 ‘2023 영남춤학회 학술대회’. 김연정 경상국립대 강사가 '탈춤에서 드러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영남지역 탈춤을 중심으로'를 발제하고 있다. 국립부산국악원 제공 지난 4일 오후 국립부산국악원 예지당에서 열린 ‘2023 영남춤학회 학술대회’. 김연정 경상국립대 강사가 '탈춤에서 드러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영남지역 탈춤을 중심으로'를 발제하고 있다. 국립부산국악원 제공

무형문화재의 원형 내지 전형은 어떻게 창조할 수 있을까, 탈춤 전승의 철학은 어디에 둘 것인가. 2016년 이른바 무형문화재법 신설로 50년간 유지돼 오던 ‘원형 유지’는 ‘전형 유지’로 바뀌었지만 지금까지도 원형과 전형 사이의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탈춤 연희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원형 보존’과 ‘전형 유지’ 사이에서 실연자들의 고민은 지속돼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같은 주장은 특히 영남 탈춤이 사회적 약자를 다루는 과정에서 더 불거졌다.

국립부산국악원(원장 이정엽)과 영남춤학회(학회장 김미숙·경상국립대 민속무용학과 교수)는 지난 4일 오후 1~6시 국립부산국악원 예지당에서 제12회 영남춤학회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지난해 11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이름을 올린 공동체 유산 ‘한국의 탈춤’을 영남의 관점에서 조명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더욱이 이번 학술대회는 기존의 진행 방식과 달리 학술과 함께 공연을 바로 연계해 진행함으로써 주제를 한층 확장하고 발전시키는 동시에 더욱 심도 있는 논의의 장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탈춤을 키워드로 올린 ‘2023 영남춤학회 학술대회’ 식전 공연으로 선보인 국가무형문화재 수영야류 양반과장 중 말뚝이춤. 국립부산국악원 제공 탈춤을 키워드로 올린 ‘2023 영남춤학회 학술대회’ 식전 공연으로 선보인 국가무형문화재 수영야류 양반과장 중 말뚝이춤. 국립부산국악원 제공

이날 행사는 국가무형문화재 수영야류 양반과장 중 말뚝이춤(출연 수영야류 예능보유자 김성율·태한영 (사)국가무형문화재수영야류보존회 회장 외) 축하 공연으로 시작됐다. 이어 정상박 동아대 명예교수가 ‘탈춤의 확장과 기본 회귀’에 대해 기조 발제를 진행했고 △탈춤에서 드러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영남지역 탈춤을 중심으로(발제 김연정·경상국립대 강사) △예술의 사회적 가치로서의 ‘치유성’에 관한 연구:수영야류를 중심으로(이송·문화기획 예감 대표) △미디어아트 관점에서 바라보는 탈춤(김태희·영산대 게임VR학부 교수) △메타버스 기반 탈춤 공연의 예술적 의미 고찰(주송현·서울과학종합대학원 디지털 예술경영 주임교수)이 차례로 발표됐다.

발표와 발표 사이엔 두 개의 무용 작품이 공연됐다. 박은화 부산대 교수·안선희 부산대 강사가 안무한 ‘내 마음의 야류’(출연 안선희 이언주 이혜리 하주은 황세민 박은화)와 장정윤 동아대 명예교수와 신상현 시어터 我대표가 안무·출연한 ‘말뚝이 vs 말-어둠에서 빛을 향하여’ 공연이다.

이날 김연정 강사는 아주 중요한 지적을 했다.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탈춤이 다음 세대로까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복지, 인권, 교육, 보건의 문제와 연관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문제 제기한 것이다.

김 강사는 영남지역 탈춤에서 사회적 약자로 장애인과 여성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알아보고, 그것에서 드러나는 장애 인식, 성차별적 시선을 재인식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탈춤이 민중적 담론을 가지고 지배 계급에 대한 비판적 풍자와 해학으로 갈등 구조를 해체하고 보편적 평등 가치를 추구하는 참여형 예술 형태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고 전했다.

다만, 이런 포장에 갇혀 여전히 비장애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타적이고 치명적인 인식을 재연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사회의 문화콘텐츠로서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고도 언급했다. 따라서 전통으로 이어온 무형문화재로서 형식과 내용을 수정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원형 보존에서 전형 유지로 개념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전형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또 다른 깊은 논의의 대상이 돼야 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지난 4일 오후 국립부산국악원 예지당에서 열린 '2023 영남춤학회 학술대회' 종합 토론 장면. 국립부산국악원 제공 지난 4일 오후 국립부산국악원 예지당에서 열린 '2023 영남춤학회 학술대회' 종합 토론 장면. 국립부산국악원 제공

특히 탈춤을 다음 세대에게도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연희로서 또는 다른 문화권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콘텐츠로서 그 영역을 넓혀 나가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고려한다면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시선에 대해서도 연희자들 스스로 인식하고 개선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탈춤의 현대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문화재 종목으로서도 전형의 중심을 어디에 두고 살려 나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정 명예교수의 주장 중 눈길을 끌었던 대목은 이런 논의의 대상을 영남 탈춤으로 삼은 이유였다. 정 명예교수에 따르면 영남 탈춤은 지역적 분포 양상이 훨씬 다양하고 전승 갈래도 가장 많다. 경북은 하회별신굿탈놀이, 병산별신굿탈놀이 같은 별신굿탈놀이, 부산은 수영들놀음, 동래들놀음 같은 들놀음, 경남은 통영오광대, 고성오광대 같은 오광대 등 세 갈래의 탈춤이 전승돼 왔다. 두 번째 이유는 영남 탈춤이 다른 탈춤보다 오래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 왕조 도읍권에서 발달한 산대놀이, 고려 왕조 도읍권에서 발달한 봉산탈춤에 비해, 별신굿탈놀이·들놀음·오광대는 신라 왕조 도읍권에서 발달했다는 것이다. 마지막 이유는 영남 탈은 외국의 영향을 덜 받아서 고유성을 많이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영남 탈춤을 보면 우리 주변에 보이는 인물을 토대로 조성한 것이고, 탈도 전반적으로 소박하고 진솔하다. 심하게 풍자하더라도 사실을 근거로 예술적으로 꼬집고 표현한다. 그에 비해 이북 지방의 탈은 조형성이 괴기하고 원색적이다. 그러므로 한국 탈, 탈놀이의 본질을 논의할 때는 영남 탈, 탈놀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본질에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정엽 부산국악원장은 “이번 학술대회에서 논의되는 내용을 기반으로 영남 탈춤의 계승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국악원이 수행해야 할 역할과 방향을 탐구하고 앞으로도 꾸준히 지역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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