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섬뜩한 살인예고가 놀이라니…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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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우 디지털미디어부장

신림역 흉기난동 모방 살인 예고 릴레이
경찰 검거된 작성자 절반이 10대 청소년
나의 즐거움 위해 남의 불행 아랑곳 않는
삐뚤어진 인터넷 ‘트롤링’ 문화의 확장판

“8월 4일 금요일 오후 6시에서 10시 사이 오리역 부근에서 칼부림하겠습니다.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도 없고 최대한 많은 사람을 죽이고 경찰도 죽이겠습니다.”

“내일 지하철 서면역 5시 식칼 들고 찾아가겠다.”

지난 3일 광란의 차량 질주와 흉기 난동으로 1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친 ‘분당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이후 전국적으로 쏟아지고 있는 살인 예고 글의 일부다. 누군지 모를 작성자의 자포자기 심정과 세상을 향한 적의가 선명하게 녹아 있어 섬뜩함을 자아낸다.


지난달 21일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2주 만에 발생한 서현역 칼부림 사건은 범행의 잔혹성과 납득할 수 없는 동기만큼이나 비슷한 무차별 흉기 습격이 언제 어디서든 나와 내 가족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었다. 금방이라도 누군가가 흉기를 들고 덮칠 것 같아 주변을 흘낏거리고, 큰 소리만 나도 심장이 내려앉는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치안 강국이라고 자부했던 대한민국이 불과 며칠 새 살벌한 감시사회로 전락해버린 듯하다.

이 같은 흉흉한 분위기에 불안감을 한층 가중시키는 것이 사건 이후 전국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살인 예고’ 글이다. 온라인상에 단순히 “사람들을 죽이겠다”는 막연한 토로부터, 구체적인 범행 일시, 장소와 대상을 지목하고, 흉기사진까지 첨부한 협박글까지 형식도 다양하다. 현재까지 경찰에 신고된 살인 예고 글만 200건이 넘는다.

신고가 접수될 때마다 경찰은 예고문에서 지목된 장소에 경찰력을 투입해 ‘거수자’에 대한 검문검색을 펼친다. 장갑차와 총기로 무장한 경찰들이 경비를 펼치는 살풍경 속에 시민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당 장소 방문을 꺼리고, 유동인구가 끊기면서 장사를 망친 상인들은 울상이다.

유례없는 ‘살인 예고 광풍’에 대한민국 사회 불안 조장과 국가 시스템 마비를 획책하는 반국가세력의 조직적인 준동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경찰에 붙잡힌 살인 예고 글 게시자의 절반 이상이 10대 청소년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실제 살해 의도가 없는 단순 장난이었다” “단순 어그로(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내용의 글을 올리는 것)였는데 사건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는 말로 선처를 호소한다.

이들의 말에서는 반공동체적 범죄인 살인 협박을 일종의 ‘인증 챌린지’나 인터넷 놀이문화 쯤으로 치부하는 태도가 엿보인다. 그 기저에 깔린 것이 온라인게임에서 유행하는 ‘트롤링(trolling)’이라는 행태다. 북유럽 신화 속 사람을 괴롭히는 괴물 ‘트롤’에서 유래한 이 용어는 함께 즐기는 팀 게임에서 고의로 자기 역할을 하지 않거나 다른 팀원을 방해해 자기 팀에 패배를 안기는 것이 대표적인 유형이다. ‘팀이 이기기 위해 내 역할을 한다’는 게임의 룰을 깨고, 팀원들의 시간과 노력을 무위로 만들면서 전체 게임을 망친다. 실력으로 다른 사람의 관심을 받지 못하니 스스로 판을 깨서 내가 승부를 결정지은 핵심 존재라는‘미친 존재감’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나로 인해 다른 이들이 화를 내고 괴로워하는 것을 오히려 즐긴다. 이 같은 행태가 유행처럼 번지다 보니 ‘민폐’를 일종의 놀이처럼 인식할 만큼 도덕성이 둔감해졌고, 급기야는 ‘살인 예고 릴레이’라는 극단적인 행태로 표출됐다.

이들은 자신이 쓴 살인 예고 글이 인터넷에서 주목 받고, 불안해진 사람들이 만남을 취소하는 등 평온한 일상이 무너지고, 폭염 속 중무장한 경찰이 출동하고 뉴스에 보도되는 모습을 보면서 우화 속 양치기 소년처럼 자기 도취감에 빠졌을 법하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잘 되는 게 싫고, 내 만족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감정이나 피해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 피의자 조선의 삐뚤어진 열등감이 이들에게서도 엿보이는 이유다.

유사 사건이 터질 때마다 경쟁일변도의 억압된 교육환경이라느니, 미래를 잠식당한 청년세대라느니,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진 불공정사회라느니 하는 사회구조적인 분석이 잇따른다. 하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내가 중요한 만큼 남도 중요하며,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타인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기초 상식의 회복이다. 젊은 여교사의 극단적 선택으로 불거진 최근의 교권 침해 논란이나 각종 갑질 사건에서 보듯 나와 내 자식이 잘 되기 위해서라면 남의 고통쯤이야 알 바 아니라는 ‘내 자식 제일주의’가 ‘우리 곁의 예비 살인마’를 키우는 토양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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