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모든 학문은 가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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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우 부경대 사학과 교수

지구의 물이 위태롭다. 최근 전라도에 평균 강우량의 3배에 가까운 장맛비가 내렸고, 중국 북부에는 사흘 만에 1m 가까운 비가 내렸다. 북극의 빙하가 녹고, 남극에선 비가 내린다고 한다. 온난화를 넘어 열대화가 진전되면서 유동적인 상태의 물이 많아졌고, 이상 기후나 국지적인 폭우로 이어지는 듯하다. 하긴 지구 자체가 물의 행성이다. 지표면의 71%가 바다이고, 인체는 절반 이상이 물이다. 물은 삶의 원천이자, 지구의 특별한 조건이다.

그런데 지구의 물은 어디에서 왔을까. 지구의 형성 과정에 수천 도에 이르는 고온 상태를 거쳤기 때문에 물은 외부에서 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래서 과학계가 주목한 게 물이 있는 혜성이고, 혜성의 물이 지구 물의 근원일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유럽우주기구(ESA)는 1994년 로제타호라는 혜성 탐사위성을 발사했다. 10년 동안 64억㎞를 날아간 위성은 ‘64P 츄류모프-게라시멘코 혜성’에 착륙선을 내려보냈다. 그 결과, 혜성의 물은 지구의 물보다 중수소 비율이 4배가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혜성의 물은 지구의 물과 달랐다. 과학계는 다시 소행성을 주목하면서 새 가설을 세우는 중이다.

가설 설정과 검증은 학문의 출발

사회과학·인문학도 예외는 없어

역사적 사실의 설명도 마찬가지

구체적·객관적인 증거 꼭 갖춰야

한일 고대사 비판, 특히 근거 필요

프레임에 기반한 일방 주장 안 돼

그렇다면 물은 몇 도에서 끓을까. 대부분의 독자는 100도라고 답할 것이지만, 이 질문은 과학적이지 않다. 제대로 된 질문이라면, 순수한 물은 1기압 상태에서 몇 도에서 끓느냐고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물이 끓는 현상은 물속의 기체가 빠져나오는 과정일 뿐, 물 자체가 끓는 게 아니다. 순수한 물은 105도 이상의 초가열 상태를 유지하면서 한 번씩 튀어 오를 뿐이다. 물이 100도에서 끓는다고 여기는 것은 일상적인 상태의 물을 이용하는 데 불편하지 않기 때문일 뿐이다. 이처럼 물이라는 분명한 실체가 있는 자연과학조차 가설을 세우고 검증을 행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자연과학이 이럴진대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은 말할 나위도 없다. 각 학문에서 세운 여러 가설이 일정 기간 사실처럼 통용되다가도, 나중에 잘못되었다는 사실이 판명되곤 한다. 가설을 넘어서 방편도 통용된다. 온조는 주몽의 아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방편이다. 삼국사기는 온조가 소서노와 우태의 아들이라는 이야기도 함께 실었고, 지은이인 김부식조차 어느 쪽이 옳은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두 가지 서로 다른 기록을 남겨 두는 것을 ‘존의(存疑)’라고 한다. 전통 역사학의 중요한 미덕이다.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없다.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 고조선이라고 한다. 고구려의 정식 국호는 고려다. 그러나 왕건의 고려와 구별하기 위해 고구려라고 할 뿐이다. 김해(金海)는 김해라고 하면서, 금관(金官)은 금관이라고 한다. 이 또한 방편이다. 다만, 많은 사람이 그것이 방편인 줄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유튜브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일부 인사들이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설명은 하나뿐이라고 강변한다. 물론 실체적 진실은 하나일지 모르지만, 무한히 많은 사실에 대한 사료는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그 진실을 알아내기는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사실은 하나뿐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김해의 수로왕이 기원 42년에 즉위했고, 임나는 반드시 일본열도에 있었고, 마한은 9년에 반드시 멸망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오류이고, 식민사학의 논리라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수로왕과 탈해가 도술 경쟁을 벌였고, 패배한 탈해가 계림(신라) 쪽으로 도망갔다고 했다. 그런데 탈해가 남해왕의 사위가 된 것은 기원 8년이다. 그러면 수로왕은 태어나기도 전에 탈해와 도술 경쟁을 펼친 셈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종합하면, 수로왕의 즉위는 42년 이전이어야만 한다. 42년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61년에 마한 장수 맹소가 보이고, 삼국지 등 중국 사서에는 3세기 후반까지 마한이 보인다.

이처럼 해괴한 주장으로 조회수를 올려 돈을 벌고 있는 유튜버들은 머지않아 내부 분열로 자멸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워 본다. 왜냐하면 그들의 주장은 서로 다른 데다, 자기주장이 가설이 아니라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갈등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임나가 일본열도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세부적으로는 대마도, 규슈 북부, 오카야마, 와카야마, 도쿄 등 주장들로 나뉜다. 유튜버끼리 서로 자기주장이 진실이라고 버티면, 보는 사람들도 편이 갈릴 수밖에 없다. 당연히 그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지, 구체적인 증거는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한편 기존 가설을 비판하려면 근거가 있는 대안도 있어야 한다. 식민사학이라는 프레임을 씌울 게 아니라 객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 대중은 현혹되기 쉽다. 미망을 버리고 참된 배움에 입문해야 유튜버의 돈벌이 놀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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