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행세하더니 사망… 세입자 ‘발 동동’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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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 소유주 “명의만 빌려줘”
법인도 책임없다 ‘나몰라라’
모르는 새 살던 집 강제경매
세입자들, 전세금 날릴 처지

지난달 법원의 강제경매가 결정된 사상구 덕포동 A 빌라. 지난달 법원의 강제경매가 결정된 사상구 덕포동 A 빌라.

부산 사상구의 한 빌라 세입자 30여 가구가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올해 초 집주인 행세를 한 계약자는 사망하고 등기상 소유자는 ‘명의만 빌려줬다’는 입장인 데다 법인은 계약자 개인의 일이라고 선을 그으면서 애꿎은 세입자들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10일 〈부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부산 사상구 덕포동 A 빌라는 지난달 18일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에서 강제경매가 결정됐다. 지난 2019년부터 전세금 약 5000만 원을 내고 살던 B 씨를 비롯해 올 2월 전세금 4800만 원을 내고 입주한 또다른 세입자 등 30여 가구는 지난달 31일 집으로 발송된 강제경매개시 우편물을 받고서야 경매 사실을 접했다. B 씨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잠도 안 오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고충을 호소했다.

빌라에는 지난 2016년부터 사상신협에 근저당 13억여 원이 잡혀있었지만, 계약 당시 집주인 행세를 하던 C 씨와 공인중개사 등이 “이 집의 매매가액이 높아 안전하고, 집주인은 다른 부동산도 많이 소유해 안전하다”는 취지로 회유하며 계약을 유도했다는 게 세입자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세입자들이 집주인으로 알고 있던 C 씨는 실제 집주인이 아니었고, 지난 1월 초 건강 악화 등 원인으로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일부 세입자들이 C 씨를 수소문하던 과정에서 실제 집주인이 따로 있다는 사실이 비로소 알려졌다. 세입자들에 따르면 C 씨는 빌라 관리업체인 한 법인의 사장이고, 계약 당시 집주인 D 씨 신분증을 들고 집주인 행세를 하며 계약을 체결했다. C 씨 사망 이후에는 법인 소속 다른 직원이 D 씨의 위임장을 보여주며 계약을 체결했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들로부터 고소장을 받은 경찰은 D 씨와 공인중개사 등을 상대로 수사를 벌였는데, 경찰은 지난 5월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인 등 2명만 공인중개사법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해당 공인중개사무소는 공인중개사법 위반으로 관할 구청에서 3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경찰은 “D 씨는 C 씨에게 1억 원을 빌려주는 대신 건물 명의를 받았고, 실제 전세 계약에 나온 적이 없는 등 사기 공범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며 “법인에 대해서도 고소가 진행 중인데, 현 대표이사나 사내이사 등도 C 씨에게 채권이 있어서 법인 명의를 받았던 관계로 보인다”고 전했다.

등기상 집주인으로 되어있는 D 씨도 자신은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D 씨는 〈부산일보〉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계약 관련은 모두 법인에서 했는데, C 씨가 사망하고 나니 법인은 책임이 없다고 한다”며 “다음 주 세입자, 법인 측과 한자리에서 만나 정확한 사실관계를 따져보기로 했다”고 밝혔다.

법인 측은 C 씨 개인이 벌인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법인 관계자는 "C 씨가 법인을 차명으로 소유했는데, 관련 통장 등 관리도 모두 법인이 아닌 C 씨가 직접 했다"며 "빌라는 2016년 준공됐는데 법인은 2018년에야 설립됐다"고 밝혔다.

세입자들은 해당 법인 명의 계좌로 보증금 일부를 돌려받은 사례도 있었다며, 정확한 금전 흐름을 규명해 보증금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글·사진=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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