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은의 문화 캔버스] 기후위기, 예술,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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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장

기후 변화는 미술관 전시에서도 중요한 주제
자연·인공의 중간, 풍화된 플라스틱 충격적
사회적 관심 환기하는 개념미술의 매력 눈길

기후위기 문제는, 최근 예술가들의 작품과 미술관 전시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주제이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에서도 기후위기를 주제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 온 장한나 작가의 ‘뉴락(New Rock)’ 전시가 열리고 있다. ‘새로운 돌’이라는 뜻의 ‘뉴락’은 작가가 전국을 떠돌며 채집한 화석화된 플라스틱을 가리키기 위해 직접 만들어 붙인 이름이다.

실제 돌이나 바위가 아니라, 버려진 플라스틱이 풍화·퇴적 작용을 거치면서 자연의 일부가 된 물질이다. 자연물이 퇴적되거나 생명체가 붙어 암석화된 것들도 있는데, 예를 들어 개미나 동물들이 정착해 살아가는 집이 된 스티로폼, 이끼가 낀 플라스틱과 같은 것들이다. 즉 자연물과 인공물 중간의 물질로 양자가 결합되어 두 극단 사이의 경계를 보여 주는 존재가 뉴락이다. 작가는 이러한 존재가 지구에 계속 생겨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미 우리 삶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플라스틱 사용과 환경 문제를 알리기 위해 이러한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뉴락들을 본 관람객들은 분명 돌처럼 보이는데 그것이 돌이 아닌 플라스틱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그리고 뉴락들이 꽤 아름다워 보이는 것들도 있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워진다. 뉴락이 떠 있는 바다 속을 수조 안에 재현한 ‘신생태계’라는 작품은 묘하게 환상적이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뉴락이 이렇게 아름답고 자연의 일부가 되어 가는 거라면, 플라스틱을 계속 사용해도 된다는 것일까’라고 질문하는 학생도 있고, 쓰레기를 미화하는 것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아름다운 쓰레기에 불편함을 느끼는 관람객들도 있다.

장한나 작가는 아름답다는 것이 결코 옳은 것은 될 수 없으며, 경고와 같은 통상적인 방식이 아닌 아름다움을 통해 기후위기 문제를 환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작가의 말대로 옳음과 아름다움, 즉 선(善)과 미(美)는 근대 철학자 칸트(1724~1804)가 마음의 삼분법을 이론화하여 설명함으로써 이미 오래전에 분리된 개념이다. 칸트는 그의 〈순수이성 비판〉 〈실천이성 비판〉 〈판단력 비판〉의 3대 비판서를 통해 지식, 윤리,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인간 마음의 작용 과정에 대해 설명함으로써 근대 철학을 완성했다.

특히 칸트는 자연미와 예술미에 관해 상세하게 설명했는데 양자를 명확하게 구분하면서도 각각이 가지는 공통적 성격을 규명했다. 예술은 인간이 계획한 생산물이라는 점에서 인정을 받는 것이지만, 예술의 의도가 너무 명백하거나 거슬리는 것이어서는 안 되고 마치 자연처럼 보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거꾸로 자연은 그것이 예술처럼 보일 때 아름답다고 하면서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판단할 때는 의식적으로 해서는 안 되며 전적으로 자유로운 자발적 존재로서 그것의 감상에 우리를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칸트는 자연미가 예술미보다 더 자유롭고 순수하다고 본 것이다. 뉴락은 자연이기도 하면서 예술이기도 하다. 칸트의 입장에서 보자면, 뉴락은 자연미의 관점에서는 아름답지 않지만, 예술미의 관점에서는 아름다울 수도 있다.

기후위기 관련 교육 등은 대개가 답이 정해져 있고, 어쩔 수 없이 혐오감이나 공포심을 유발하거나 위험을 경고하는 방식이 된다. 그러나 답이 정해진 예술과 전시는 흥미롭지 않다. 오히려 예술 작품과 전시는 상충하는 논의의 장이 역동적으로 펼쳐질 수 있을 때 더 성공적이다. 아름다운 뉴락을 접한 관람객들은 한참 동안 서서 감상하기도 하고 함께 온 가족, 연인, 친구들과 여러 의견들을 나누며 환경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전시를 보러 온 학생들은 가끔 뉴락이 예술 작품이 맞는지 묻기도 한다. 작가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닌, 채집된 물건도 예술이 될 수 있느냐는 좋은 질문이다. 뉴락은 작가가 특별한 의미 전달을 위해 대상을 선택하고 그것에 예술의 지위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레디메이드 예술이고, 개념미술이다. 또한 사회적 관심과 변화를 위해 직접 행동하는 작가의 실천적 예술 작품이다.

사실 장한나 작가의 뉴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가 처음 뉴락을 만났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감정을 관람객들도 느끼게 되는 소위 ‘현타’의 순간인 것 같다. 바로 그 깨달음의 순간이 이 작품을 개념미술로 만든다. 애초에 작가의 뉴락 채집은 2017년 바닷가에서 돌멩이라고 생각하고 집어 들었던 그것이 너무 가볍다는 데 놀라고, 이어 돌이 아니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되었다. 돌처럼 보이는 꽤 아름다운 뉴락들이 사실은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의 가슴속을 스치는 미묘한 감정, 섬뜩함, 이질감, 불편함, 염려와 걱정 등이 이 작품의 의미이다. 작가가 우리에게 이야기하려는 것도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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