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진의 여행 너머] 불편해서 캠핑이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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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라이프부 차장

3년 전, 캠핑용 조명을 선물받았다. 텐트도 없는데 조명이 뭔 쓸모람. 한동안 구석에 처박아 뒀다가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계곡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자는 게 소원이었던 그때. 부모님은 아들의 소망을 들어주지 않았다. 위험하다는 이유를 대셨던 것 같다.

뒤늦게 소원 성취도 할 겸, 코로나 시국에 팍팍해진 살림을 아껴 텐트와 기본 캠핑 장비를 마련했다. 경남의 한 자연휴양림으로 떠나 첫 밤을 보낸 뒤, 부모님이 캠핑을 멀리하신 진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상상 속 그림과 달리 현실의 캠핑은 너무 힘들었던 것이다. 텐트 설치부터 화장실 이용, 요리·설거지, 잠자리까지,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도시인에겐 모든 게 불편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끝이 아니었다. 곰팡이가 안 피게끔 햇볕 바른 곳에서 텐트를 잘 말리고, 버너·식탁·의자 등 각종 장비도 부지런히 닦아야 했다.

캠핑의 실상을 알게 됐지만 포기는커녕 오기가 생겼다. 여행길을 다 막아 버린 코로나 팬데믹 탓도 컸다. 두 번, 세 번, 네 번, 요령이 생기면서 텐트 설치 시간은 비약적으로 줄었다. 불편한 잠자리와 화장실도 어느새 익숙해졌다.

아무리 편안한 휴양지라도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데, 캠핑족은 더 큰 고생을 사서 한다. 각자 매료된 이유가 있겠지만, 힘듦과 불편함 속에서 캠핑의 매력을 찾을 수 있다. 텐트 설치만 해도 힘드니까 보람이 크다. ‘아기돼지 삼형제’ 동화처럼 기둥 하나 지붕 하나에 공을 들일수록 비바람 걱정 없이 든든하게 밤을 보낼 수 있다.

캠핑 경험이 쌓이면서 가족마다 역할이 생겼다. 한 명은 의자와 식탁을 세팅하고, 한 명은 취사장에서 채소를 손질하고, 한 명은 침낭과 이불을 편다. 불편함을 줄이려 손을 빌리고 발로 거들다 보면 아파트만은 못해도 아늑한 집 한 채, 맛있는 한 끼 식사 완성이다.

흘린 땀방울만큼 결과를 얻는다는 점에서 캠핑은 교육적이다. 주변에서 보고 배울 점도 많다. 모자란 물자를 나누고, 이웃을 돕는 캠핑러가 있는가 하면, 고성방가를 일삼는 ‘공공의 적’도 간혹 만난다. 캠핑장은 본보기와 반면교사가 모두 있기에, 살아 있는 교육 현장인 셈이다. 요즘 한국사회 화두인 학교폭력, 교권침해 같은 문제도 학교 밖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힘듦을 가르치는 부모, 불편함을 인내하는 아이라면 자연스레 생활 속에 존중과 배려심이 스며들 터다.

불편하니까 캠핑인데, 요즘 캠핑장은 편의시설을 웬만큼 갖추고 있다. 취사장·샤워실에 에어컨이 설치된 곳도 제법 있다. 파행을 빚은 새만금 잼버리의 비위생적인 화장실 따위는 찾아보기 어렵다. 잼버리 관계자들이 준비 명목으로 해외 여러 곳을 시찰했다고 한다. 국내 캠핑장만 제대도 둘러봤어도 충분히 배울 수 있었을 것을.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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