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조선통신사 체험선을 띄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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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만 국립해양박물관장

태풍 전야의 8월 초, 부산항이 씨끌벅적했다. 212년 만에 조선통신사 사절단이 제13차 항해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가대 해신제를 시작으로 조선통신사 항해에 한껏 들뜬 시민들의 긴장과 흥분은 한여름 더위보다 더 뜨거웠다. 마침내 부산항을 떠난 ‘복원선’은 대마도 북단 히타카츠항에 도착했고, 이튿날 대마도 남쪽 이즈하라항에서 열린 ‘이즈하라 마츠리’에 참여도 했다.

정유재란 직후인 1607년부터 약 200여 년간 진행됐던 조선통신사 사절단의 일본 항해는 1811년을 끝으로 중단됐다. 1811년 제12차 사절단은 대마도에서 귀환해야 했었다. 일본이 사절단의 규모와 행사도 대폭 축소하고, 대마도까지만 오도록 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굳이 조선이 아니라도 충분히 서구 선진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그후, 메이지유신 성공으로 현대화 일로를 달리던 일본은 마침내 한반도를 강제 침탈하기에 이르렀다. 1945년 해방 이후 1965년 국교 정상화까지 한일 외교 협력은 중단되었다. 그후로도 오래도록 질시와 반목, 불통이 지속되었고,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 정책이 발효되고 나서야 비로소 문화 교류가 정상화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일제강점기에 발생했던 성노예 사죄, 강제 동원 배상, 화이트리스트 배제와 지소미아 중단, 핵오염수 방류 등 긴장과 갈등은 줄을 이었다.

‘일의대수(一衣帶水)’라는 말이 있다. ‘물만 건너면 닿는 아주 가까운 이웃’이란 말이다. 이웃을 잘 만나는 것도 복 중의 복이다. 그런데, 어찌하랴! 한반도의 운명에 일본열도는 늘 불을 지고 풀섶을 지나는 형국이니 말이다. 그럴수록 어르고 달래야 한다. 조선통신사의 철학이 ‘성신교린(誠信交隣)’ 즉, ‘정성과 믿음으로 이웃과 벗하다’인 것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와 희망을 위해 친하게 지내자는 얘기다. 그런 측면에서 212년 만의 사행길 복원은 한일 문화 교류에 있어 매우 의미있고 중요한 행사였음에 틀림없다. 정치 상황이 긴장과 갈등으로 치달을수록 민간이 더 튼튼한 교류 협력을 지속해야 한다. 특히 부산은 역사 이래 지금까지 대일 교류의 교두보였고, 대일 항로는 ‘부산의 뱃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국제 노선이자 소통 창구였다.

그런 차원에서 조선통신사는 매우 중요한 한일 민간 교류의 상징이다. 이것이 ‘부산형 조선통신사 체험선박’의 건조가 시급한 이유다. 평소에는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선상박물관’으로 사용하다 주말에는 항만 투어를 통해 시민들에게 좀 더 친밀한 해양 체험과 교육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3~6개월에 한 번씩 통신사 사절단 형식의 국제 이벤트도 진행할 수 있다. 한일 청년 100여 명이 동승해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를 거쳐 세토나이카이를 경유하는 동안 한일 관계의 미래가 서서히 희망과 평화로 전환되지 않겠는가?

이를 위해서는 옛 통신사 선박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말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체험선’을 짓는 것이 절실하다. 12번의 통신사 사절단 사행에 당대 최고의 조선 기술을 적용한 최첨단 선박을 타고 갔던 것처럼, 오늘날 세계 최고 조선기술을 유감없이 구현한 최신 체험선으로 새로운 사절단을 운영하자는 얘기다. 통신사 사행길의 기종점인 부산 행사에, 매번 목포에 있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재현선을 빌려올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재현선은 2018년 돛 대신 엔진을 장착해 건조한 학술용 목선이다.

국립해양박물관은 ‘조선통신사 체험선박 건조를 통한 해양역사문화 체험’을 실현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타당성 용역도 끝났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기재부의 예산 편성을 요청 중이다. 체험선 건조 실현을 위해 시민사회는 물론 부산시와 부산문화재단, 지역 정치권과 언론의 역할이 절실하다. 조선통신사 체험선이야말로 다가오는 새로운 한일 교류의 새 장을 펼치는 소중한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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