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기부 후진국’ 코리아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변현철 독자여론부장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 ‘아너’
롯데 박세웅, 부산 스포츠 선수 1호
“나눔은 실천이 중요” 큰 배포에 감동
한국, 작년 세계기부지수 88위 그쳐
재산 상속, 국내 전통 문화가 ‘걸림돌’
세제 지원 확대·기부 조기 교육 필요

최근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 박세웅이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부산사랑의열매)의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해 화제가 됐다. 박세웅은 스포츠 선수로서 부산에서는 첫 번째, 전국적에서는 31번째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자가 됐다. 박세웅은 이날 가입식에서 “꼭 큰 금액이 아니더라도 남을 돕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기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부는 금액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실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면서 “저의 가입식을 계기로 더 많은 스포츠인과 시민들이 나눔 실천에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말해 프로 선수다운 큰 배포를 보여줬다.

박세웅과 인터뷰를 한 후 ‘그가 부산 스포츠 선수 1호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자였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부산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스포츠인들 중 박세웅을 제외하고 여태껏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를 한 선수가 없었다는 점이 너무 의아했고 실망스럽기도 했다. 사실 박세웅은 부산 출신 선수가 아니다. 경북 구미시에서 태어났고 경북고를 나온 대구·경북 사람이다. 연고지가 부산인 롯데에서 뛰고 있으니 부산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고 기부를 하지 않았나 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부산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즉 우리나라의 기부 문화 수준이 전 세계에서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봤다. 지난 1월 영국 자선지원재단(CAF·Charities Aid Foundation)이 발표한 ‘2022년 세계기부지수’ 순위에서 대한민국이 88위를 기록해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세계기부지수는 CAF가 2010년부터 매년 120여 개국, 200만여 명을 대상으로 기부와 관련한 설문조사 등을 실시해 발표하는 지표이다. CAF는 △기부 의향 △기부 금액 △자원봉사 시간 등의 항목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 이 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한국은 코로나19 확산이 정점을 찍었던 2021년에는 110위로 사실상 꼴찌에 가까웠다. 기부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미국(3위), 호주(4위), 영국(17위)은 물론 중국(49위)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최근 10년간 한국의 순위는 2011년 57위에서 2022년 88위로 30계단 이상 하락했다. 반면 중국은 같은 기간 140위에서 49위로 대폭 상승했다. 세계 경제대국 2위로의 도약과 함께 인민이 함께 부유해지자는 ‘공동 부유’ 운동이 확산된 결과이다.

인도네시아와 케냐가 1~2위를 차지해 CAF의 기부지수가 무한 신뢰할 만한 지표는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설문조사의 경우 항목 설정과 조사 방법 등에 따라 결과가 판이하게 나올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이 88위라는 사실에 너무 실망하거나 비관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사실상 세계 10위권 내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한국이 적어도 50위권 내에 들지 못했다는 사실은 ‘기부 후진국’ 수준임을 방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기부 문화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발표한 ‘공익 활동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기부 참여율과 기부 의향이 지난 10년간 하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13세 이상 기부 참여율은 2011년 36.4%에서 2021년 21.6%로, 기부 의향은 같은 기간 45.8%에서 37.2%로 감소했다. 보고서는 GDP 대비 민간 기부 비중이 정체된 이유로 2014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뀐 개인 기부금 공제 방식 변경과 코로나19 팬데믹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사랑의열매 등 법정기부금단체 관계자들은 민간 기부 활성화를 위해 △기부금 세제 지원 확대 △공익법인 규제 개선 △생활 속 기부 문화 확산 등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부산사랑의열매 한 관계자는 “개인 기부의 경우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한국의 상속 문화가 나눔 문화 활성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기부를 하면 ‘재산이 너무 많아서 그러는구나’라고 ‘색안경’을 끼고 기부자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도 큰 문제”라며 “반면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의 경우 부의 사회 환원,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이 보편·일상화돼 있는 점이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기부지수 선진국과 같이 소득공제 방식으로 재전환하거나 소득공제·세액공제 중 선택 적용 방식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세액공제율도 현행 15%에서 30% 이상으로 높이는 등 과감한 세제 지원이 있어야 한다”며 “생활 속 기부 문화 확산을 위해 어릴 때부터 나눔에 대한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기부 여력과 재원이 큰 대기업의 공익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재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간 기부 활성화를 위해 규제 일변도의 정책에서 벗어나 규제는 풀고 인센티브는 대폭 늘리는 전향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