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성 추정 ‘동광동 방공호’, 재개발 바람에 훼손 위기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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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최대 방공호인 ‘근대 유산’
일대 ‘영주1구역 정비사업’ 추진
시 도시계획위 사전타당성 통과
구청 “문화재적 가치 문의한 상태”

부산에 남아있는 현존 방공호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중구 동광동 방공호 입구. 부산일보DB 부산에 남아있는 현존 방공호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중구 동광동 방공호 입구. 부산일보DB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산 최대 규모의 방공호가 재개발 사업으로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 부산 곳곳에 있는 방공호에 대한 뚜렷한 실태조사도 미흡한 형편이어서 근대 문화유산 관리 소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28일 중구청에 따르면, 중구 동광동 일대에 ‘영주1구역 주택재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현재 재개발 사업에 대한 부산시 도시계획위원회의 사전타당성 조사는 통과된 상태로 재개발 추진위원회 측에서 구체적인 재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중이다.

영주1구역재개발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주민 대다수가 재개발을 원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재개발 조합 설립을 위한 토지 소유자 75% 이상 동의도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고 말했다.

재개발 바람이 동광동 일대를 휩쓸면서 해당 구역 내 포함된 동광동 방공호에 대한 훼손 우려도 함께 제기된다. 재개발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경우 지반 공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표면 아래 위치한 방공호가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공호에 대한 소유권이 불분명한 데다 주민 대다수가 재개발을 원하면서 중구청에서도 섣불리 간섭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구청 관계자는 “현재 동광동 방공호에 대한 문화재적 가치를 관련 부서에 문의한 상태”라며 “아직 재개발 계획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은 만큼 방공호가 훼손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동광동 방공호는 과거 부산항을 낀 원도심을 중심으로 일본군 요새사령부 등 일본군 본거지가 위치하면서 덩달아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 규모가 100평에 달해 부산 내 현존하는 방공호 중 최대 규모로 꼽히는 동광동 방공호는 불과 3~4년 전까지 일부 주민이 거주했던 살아 숨 쉬는 역사·문화적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시 차원의 실태조사나 연구는 미진한 탓에 이러한 형태의 방공호가 부산 내 몇 개인지, 왜 조성됐는지는 불분명한 상태다. 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부산 내 방공호는 중구, 동구, 강서구, 해운대구 등 총 8개로 파악된다. 하지만 이는 각 기초 지자체가 제출한 현황을 단순 취합한 것으로 정확한 수치라고 볼 수 없다는 게 전문가 설명이다.

시 관계자는 “2021년 부산 내 방공호에 대한 기록과 연구 용역을 위해 예산을 신청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예산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별다른 조사를 하지 못했다”며 “현재는 부산연구원을 통해 방공호에 대한 실태조사, 기록사업, 활용법을 연구하는 방법을 검토하는 중이다”고 말했다.

근대 문화재를 연구 혹은 보존하기 위해 필수적인 ‘밑바탕’ 조사마저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공사장에 방치된 방공호도 존재한다. 2021년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 인근에서 철거 공사 도중 우연히 일제강점기 방공호가 발견됐지만, 보존 대책 없이 지금까지 공사장에 방치된 상태다.

전문가는 일제강점기 시절 식민지 수탈 창구이자 병참기지로서 부산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방공호에 대한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피란수도 부산 문화유산에 신경 쓰는 만큼 다른 근대 문화재에도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재개발로부터 방공호를 보호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과 다른 부산 내 방공호에 대한 연구 사업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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