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김종식과 오우암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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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 문화부 에디터

부산화단 1세대 화가 김종식
전쟁 후 시대상 그린 오우암
그들이 남긴 예술적 유산들
지역에서 활용할 방법 고민

1918년생 김종식 작가. 여명기 부산화단을 가꾼 1세대 토박이 작가인 그를 빼놓고는 부산미술을 이야기할 수 없다. 김 작가가 30년 이상 거주했던 부산 중구 대청동에서 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전시가 열리는 부산광역시중구문화원에서는 작가가 창작활동의 거점으로 삼았던 아틀리에 건물이 바로 보인다.

한때 ‘남장 김종식 기념관’으로 운영됐던 아틀리에 건물은 부산 미술사에서 중요한 공간이다. 건축면적 80㎡ 규모의 2층 건물은 작가와 가족이 살았던 집인 동시에 부산 예술인들이 무시로 드나드는 작업실이었다. 부산 최초 지역 화가 모임인 ‘토벽회’의 아지트가 되기도 했다. 김 작가의 아들인 김헌 김종식미술관 이사장이 ‘바다가 바로 발밑에 보였다’고 말할 정도로 부산항이 잘 보이는 이곳에서 ‘부산항’ 시리즈가 탄생했다. 부산시립미술관에 소장된 ‘부산항 여름’과 ‘부산항 겨울’은 1949년에 그려진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 나온 ‘부산항 석양’은 1956년 작품이다. 이 그림들이 제작된 사이에 큰 사건이 있었다. 바로 1953년 부산 역전 대화재이다. 화마에 집도 작품도 모두 잃은 작가가 느꼈을 괴로움은 작품 ‘인간가족’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부인이 발벗고 나선 덕에 이 건물이 동네에서 가장 먼저 재건됐다는 이야기에서는 화가의 작업을 응원하는 가족애도 느낄 수 있었다.


김 작가는 1988년 세상을 떠났다. 20년 뒤 기념관이 현재의 부산진구에 위치한 김종식미술관으로 이전한 이후 아틀리에 건물은 비어있는 상태이다. 한때 지자체가 매입을 검토한 적이 있지만 성사되지는 못했다. 중구 일대 문화벨트 취재를 하며 이 집을 봤을 때 안타까웠다. 이번 전시 초반에 김종식 작가의 제자들이 관람을 하고 갔다. 선생님과 야외 스케치를 같이 다닌 이야기, 술을 마신 이야기 등이 오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늦기 전에 이 아틀리에에 대한 기억을 보존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38년생 오우암 작가. 오 작가는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때 어머니를 잃고 ‘전쟁고아’가 됐다. 군 전역 후 부산의 한 수녀원에서 30년을 근무했던 그는 보일러실에서 합판에 에나멜페인트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미대에 다니는 딸의 물감을 사용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들의 군상,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림을 주는 풍경.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오 작가의 그림은 미술 전공자인 딸도 놀라게 했다.

오우암 작가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저 작가는 누굴까’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의 생이 담긴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난해 부산비엔날레 오픈 날 부산현대미술관 지하에서 오 작가의 작품을 만났을 때 반가웠다.

스산한 새벽 풍경 속에 홀로 춤추는 무당, 거대한 기차역 울타리 뒤에 선 어린아이의 뒷모습, 한쪽 다리를 잃은 상이군인이 되어 가족 뒤를 따라 마을로 돌아가는 길. 격변의 시기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이 교차하는 기차역. 오 작가의 작품에는 유년의 기억이 많이 담겨 있다. 2022 부산비엔날레 김해주 전시감독은 오 작가가 과거 기억과 트라우마에서 끌어올려진 장면들을 통해 전쟁과 이념 투쟁으로 상처 입은 한국 현대사의 어떤 원형적 장면을 재현하고 있다고 했다.

생의 마지막은 경남 함양에서 보냈지만, 오 작가는 부산에서 56년을 살았다. 가장 오래 살았던 공간인 만큼 그림 속에 부산의 장소가 종종 나온다. 그림 속 부산의 도심과 풍경들은 맑은 하늘이나 바다와 같은 푸른색을 사용했는데, 그 속에서도 고독감이 전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도 앞바다, 깡깡이 마을, 자갈치, 범일동 구름다리, 옛날 적기 일대(현 우암동) 등이 등장한다. 감만동 철길 건널목과 ‘이번 역은 남포역’을 알리는 도시철도 1호선 내부를 그린 그림을 보면 부산의 역사가 담긴 작품이 가지는 의미가 크게 다가온다.

지난 7월 26일 오우암 작가가 별세했다. 딸인 오소영 작가는 아버지의 작품을 기증할 곳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부산비엔날레에서 오 작가의 그림을 발견한 사람들에게서 구입 문의가 오고 있지만 그렇게 흩어지는 것보다는 한곳에 모아서 더 많은 이들이 볼 수 있게 하면 좋겠다고 했다. 딸의 말에 따르면 오 작가는 그림이 마음에 안 들면 전시작 위에도 덮어 그려서 남아 있는 작품 수가 그리 많지 않다고 했다. 부산과 한국사의 장면들이 담긴 그의 작품을 부산에서 오래도록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예술로 부산을 지켜오고 부산을 담아낸 두 작가, 그들이 남긴 유산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은 남아있는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이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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