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없는 돌 위에 쌓인 파도의 시간 [전시를 듣다]
정대현 사진전 ‘이터널 웨이브스’
현직 사진기자, 사진가로 첫 전시
새벽 시간 바다의 돌·파도 등 찍어
“침묵하는 것들 카메라 담고 싶어”
사진을 좋아했다. 사진학과 진학을 희망했지만 사정이 생겨 가지 못했다. 대학 졸업 후 언론사에 입사해 사진기자로 일했다. 50대 중반을 넘어 첫 사진전을 열게 됐다. ‘사진가’로 사람들 앞에 선 정대현 <부산일보> 선임기자의 이야기다.
사진가 정대현 개인전 ‘이터널 웨이브스(영원의 물결)’가 오는 10일까지 부산 금정구 장전동 아트스페이스 이신에서 열린다. 정 사진가는 고등학교 때 사진을 시작했다. “사진이 너무 좋아 사진 서클에 가입하고, 대학도 사진학과를 가기로 했는데 사고가 생겼어요.” 아버지가 어렵게 내준 값비싼 ‘카메라 풀 세트’를 선배에게 빌려줬다가 잃어버린 것이다. “집에서 쫓겨날 뻔했어요. 그리고 사진과 진학은 포기했죠.” 그래도 마음속에는 언젠가 사진을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정 사진가는 1990년 신문사에 입사해 30여 년간 현장을 누비며 취재 사진을 찍었다. “일간지 기자로 하루하루의 조류에 휩쓸리고, 다음날이면 그 많은 정보와 말들이 휘발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목마름이 일었어요.” 시간이 묵묵히 담긴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던 그에게 ‘징검다리’가 생겼다. 2015년 12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부산일보>에 연재된 ‘사진사색’이다. 사진기자들의 시선으로 색다른 해석과 의미를 부여한, 사진이 주인공이 되는 지면. 70여 건의 연재물에 정 사진가는 19번 참여했다.
‘이터널 웨이브스’전에서는 최근 3년간 송정, 해운대, 송도 등 부산의 해수욕장에서 찍은 사진 30여 점을 전시한다. 그중에서 돌과 파도를 찍은 사진이 눈길을 끈다. 정 사진가는 여명의 시간에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일출 30분 전부터 사물이 보이기 시작해요. 그때 장노출 기법으로 찍으면 파도가 왔다 갔다 하면서 돌 위에 그림자의 형태로 축적되는 것이 사진에 담기죠.”
화면에 등장하는 돌들은 손가락 몇 마디 정도 크기의 작은 돌이다. “물이 들어오고 빠져나가면서 돌이 많이 흔들려요. 심지어 카메라도 바람에 흔들려서 건질 수 있는 사진이 많지 않아요.” 돌 주위에 작은 불꽃이 이는 것 같은 사진은 파도의 흔적(물기)이 빛에 반사된 것이다. 돌이 걸어오는 것 같은 이미지는 물이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면서 남긴 흔적(물길)이다. 모두 흔들림 없이 버텨준 돌 위에 무수한 파도가 남긴 시간의 기록이다.
새벽에 사진을 계속 찍으면 색의 변화도 알게 된다. “블루에서 레드로, 커피를 드립하는 것처럼 색들이 드립 되는 모습을 보게 되죠. 그러면 평소 우리가 못 보는 색들이 드러나요.” 푸른색과 붉은색이 어우러진 사진은 바다 옆 도로를 지나가는 차들의 움직임을 찍은 것이다. 정 사진가는 ‘추상미술이 주는 감동’을 사진에서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를 고민한 작업이라고 했다.
“돌이켜 보면 어려울 때마다 바다에 많이 가 있었더라고요. 파도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바다는 시작하는 그날부터 이렇게 계속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요. 앞으로도 침묵하는 것들과 시간이 담긴 것들에 계속 시선이 머물 것 같아요.”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