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컨테이너선 대형화, 한계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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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혁 부산항만공사 국제물류지원부장

2만 4000TEU 초대형 ‘컨선’ 운항
규모의 경제 통한 비용 절감 목적
기항은 적은데 항만 대형화 필요
효율성 위해 더는 커지지 않아야

해운·항만업계에는 컨테이너 선박이 어느 수준까지 커질 것이냐에 대한 논쟁이 있다. 한쪽은 규모의 경제를 통한 해상운송 비용의 절감을 위해 대형화가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한쪽은 이제 대형화는 진정한 한계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과거에도 많은 전문가가 “더 이상의 대형화는 힘들다”고 주장한 이후 더 큰 선박이 출현했기 때문에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하기가 쉽지 않다. 선사 입장에서는 수송 단가를 줄이기 위한 방법 중 선박 대형화만큼 효율적인 것도 없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의 컨테이너 박스 탑재 용량은 80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였다. 17노트 속도로 항해 시 하루 약 80t의 연료를 소모하고 20여 명의 선원이 탑승한다. 수송 용량이 3배로 커진 2023년 현재 최대 선박인 2만 4000TEU급의 하루 연료 소모량은 8000TEU급과 큰 차이가 없는 약 100t이고 탑승자 수도 비슷하다. 당연히 컨테이너 박스 1개당 수송 단가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대형화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주장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가장 큰 이유는 대형 선박을 통한 비용절감 효과가 더 이상 향상되지 않고 있어서다. 영국 해운조사분석기관 조사에 따르면, 선박 대형화로 인한 해상수송 비용절감 효과가 25%인데 반해 대형화에 따른 항만 적체 등의 비효율 탓에 선사가 얻을 수 있는 실제 대형화의 효용은 5%밖에 되지 않는다.

컨테이너선의 대형화는 유조선, 벌크선 등 다른 종류의 선박에 비해 역사상 유례가 없는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선박 건조에 3년이 걸리지 않는 것과는 달리 항만 인프라는 10여 년에 달하는 긴 시간에 걸쳐 조성된다. 부산신항 개발계획이 1995년 시작됐는데, 2006년에야 먼저 조성된 3개 선석의 운영을 시작했다. 11년이 걸린 셈이다. 부산신항은 이후 다시 17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개발돼 현재 26개 선석이 운영된다. 현재 운영 중인 대부분의 항만 인프라는 초대형 선박(2만 4000TEU)이 등장하기 약 25년 전에 계획된 것이다. 따라서 선박과 항만 인프라의 ‘미스매치’는 어느 정도 비효율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고 본다.

부산신항의 선박당 평균 하역(양하·적하)량은 약 5000TEU, 평균 하역작업 시간은 1.3일이다. 하지만 초대형 선박은 많을 경우 2만TEU를 하역하면서 4일이나 소요된다. 한꺼번에 엄청난 물량이 하역될 경우 부두 내 컨테이너 야적장의 혼란으로 심각한 적체가 발생한다. 이는 부산항뿐 아니라 전 세계 주요 항만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부두 수심도 문제가 된다. 부산신항의 당초 개발계획 수심은 15m였으나 선박 대형화 추세 때문에 17m로 수정됐다. 안벽크레인 역시 높이와 폭이 초대형 선박 하역에 부적합한 경우 기당 100억 원을 호가하는 신규 크레인을 설치하거나 기존 크레인 능력을 개선해야 한다. 수심을 키우기 위한 준설과 크레인 구입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돼 초대형 선박에 맞춰 자원을 투입하지 않는 항만도 많다. 사실 연간 입항하는 선박 수에 비해 초대형 선박의 기항 횟수는 많지 않은 까닭이다. 세계 굴지의 허브항인 부산항조차 2만TEU급 이상 초대형 선박의 입항 비중은 연 2%에 불과하다.

2015년 컨테이너선 초대형화로 세계 항만에서 갖가지 비효율이 발생하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초대형 선박의 부정적 영향을 다룬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세계 주요 허브항 CEO들이 연대해 선사의 초대형 선박 발주에 제동을 걸자는 다소 과격한 주장도 나왔다. ‘필요 이상’의 초대형화는 항만 입장에선 달갑지 않다. “더 이상 대형화되지 않을 것”이란 주장은 필자와 같은 항만업계 종사자들의 작은 희망사항이기도 하다.

대형화에 비관적인 또 다른 이유는 선사들도 이제 초대형화의 단점을 자각하기 시작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통상 북미 노선에 1만TEU, 유럽 노선에 2만TEU급 선박이 투입되는데, 운송 수요 변화로 선박 배선을 변경할 때 2만TEU급은 큰 크기로 인해 기항할 수 있는 허브항의 수가 제한돼 선박 운용의 유연성이 떨어진다. 초대형 항공기인 에어버스 A380이 항공사들 사이에 인기가 줄어들어 2021년 생산 중단에 들어간 것도 대형화로 인한 유연성 저하를 보여 주는 사례다.

공급망은 말 그대로 ‘체인’(chain)으로 엮여 있다. 하나의 체인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곧 전체 문제가 된다. 선박이 과도하게 대형화돼 ‘항만’이라는 체인에 문제가 발생하면, 글로벌 공급망 전체의 문제가 된다. “더 이상의 대형화는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앞으로는 거짓말(?)로 드러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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