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부산 오는 현미경 석학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인류가 질병과의 기나긴 전쟁에서 참패하지 않고 버티게 해 준 일등공신은 바로 현미경이다. 현미경을 통해 비로소 인류는 적의 정확한 정체가 세균과 바이러스 등 미생물임을 깨달았다. 현미경이 조금만 더 일찍 발명됐더라면 흑사병 같은 암흑기를 인류는 겪지 않았을 터이다.

현미경으로 미생물을 처음 본 사람은 네덜란드 출신의 안톤 판 레벤후크(1632~1723)다. 젊었을 적 레벤후크는 포목상으로 일했고, 직업상 옷감의 재질을 관찰할 필요가 있었다. 이미 현미경의 개념이 어느 정도 알려졌던 때라 손재주 좋았던 레벤후크는 직접 렌즈를 깎고 다듬어 결국 현미경까지 만들어 냈다. 당시 그가 만든 현미경은, 놀랍게도, 사물을 수백 배 확대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레벤후크는 현미경에 흠뻑 빠졌다. 무엇에든 현미경을 들이댔다. 현미경 건너편의 세계는 전에 보지 못한 기이한 존재들로 가득했다. 어느 날 우연히 빗방울을 현미경으로 관찰했는데, 그 속에는 수백 배로 확대해 보지 않고서는 결코 확인할 수 없는 수많은 생명체가 꿈틀대고 있었다. 레벤후크는 그렇게 보게 된 생명체에 ‘극미동물(animalcul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늘날 미생물이라 부르는 그것이었다.

한 상인의 우연한 호기심이 인류 지성에 혁명을 일으켰다. 레벤후크 이후 현미경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지금은 원자 단위까지 관찰할 수 있는 현미경도 개발됐다. 이 과정에서 현미경은 수많은 질병 극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나아가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끌기도 했다. 현미경으로 인해 인류의 역사가 획기적으로 바뀐 것이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 중 현미경을 연구한 이가 많았던 데에는 그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현미경으로 노벨상을 받은 이가 3명이나 부산을 찾는다. 현미경으로 ‘꿈의 나노 물질’로 불리는 그래핀(graphene)을 발견한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 생명체 분자 구조를 원자 수준에서 관찰할 수 있는 극저온 전자현미경을 함께 개발한 리처드 핸더슨 캠프리지대 교수와 요하임 프랭크 컬럼비아대 교수가 그들이다.

이들은 오는 10~15일 벡스코에서 열리는 ‘제20회 세계현미경총회(IMC)’에서 강연한다. IMC는 국제현미경학회연맹(IFSM)이 주최하는 현미경 분야 최대 학술행사. 올림픽처럼 4년에 한 번씩 열리는데, 한국의 IMC 개최는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다. 노벨상을 받은 석학의 강연이라 하니, 현미경에 문외한이라도 찾아가 들음직하겠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