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권자 아니어도 학대 책임… 아동학대 보호자 기준 세워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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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실질적 양육 형태 중시
동거녀 징역 20년형 중형 평가
현행법상 개념 모호 적용 한계
성매매 강요 알려져 재판 반전

'가을이 사건'의 동거녀에게 중형이 선고돼 어른들의 탐욕과 폭력이 맞물려 천천히 진행된 가을이 죽음의 과정이 명확해졌다. 논란이 됐던 아동학대 보호자 개념에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 것도 판결의 의의로 평가된다.


가을이(가명)의 생전 모습. 부산일보DB 가을이(가명)의 생전 모습. 부산일보DB

■보호자 기준을 제시한 판례

동거녀 A 씨에게 선고된 징역 20년은 상당한 중형으로 평가된다. A 씨는 적절한 행위를 하지 않은 ‘부작위’에 의한 학대 혐의만 받았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부작위에 의한 학대라고 하더라도 가을이가 겪은 고통을 고려할 때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최근 친모가 A 씨의 직접적인 폭력 등을 증언했지만, 기소 뒤여서 재판 과정에선 다뤄지지 않았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아동 보호자에 대해 진일보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데에 판결의 의미를 둔다. 현행 아동학대처벌법 등에서는 보호자의 개념이 모호해 양육 중인 부모나 아동 기관 종사자 등이 아닌 경우 혐의 적용이 쉽지 않았다. 검찰이 A 씨를 기소할 때 방조 혐의를 적용한 것도 이런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형식적인 관계보다 실질적인 양육 형태 등을 중시해 판결했다. 향후 비슷한 아동 학대 사건에서도 보호자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판례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공혜정 대표는 “친권자가 아닌 사람이라도 보호자 의무를 외면했다는 점에서 공범으로 인정했다는 점이 매우 뜻깊다”며 “관련법 개정을 통해 보호자의 지위가 명확하게 명문화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어렵사리 구현된 어른들에 대한 단죄

가을이 사건은 친모가 수사와 재판 초기 ‘단독범행’이라고 주장해 자칫 반쪽짜리 진실 규명에 그칠 수도 있었다. 친모는 지난해 12월 가을이 사망 뒤 A 씨가 가을이의 죽음이나 자신의 성매매와는 무관하다고 진술했다. 이 때문에 초기만 해도 가을이 사건은 잔혹한 모친의 단독 범행으로 알려졌다.

당시 친모는 정서적 의존 상태에서 A 씨가 자신을 구해줄 인물이라고 여긴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구속 상태였던 지난 1월에도 “짐이 돼 미안하다”, “걱정해 줘 고맙다”는 등의 편지를 보낼 정도의 의존성을 보였다.

친모의 비정상적인 상황 인식은 장기간 고립된 생활의 영향과 의존성이 강한 개인적 성향 등이 반영된 결과였다. 수사 관계자들도 “유불리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인지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답답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사실상 고립돼 홀로 수사와 재판을 받은 것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친모는 기소 뒤에도 국선 변론만 받았고, 재판 중 수사 당시 진술을 인정하는 형식적인 답변만 했다.

다행히 성매매를 강요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진실 규명의 여론이 일고 상황은 변했다. 구형까지 마친 재판이 연장돼 친모에게 다시 진술할 기회가 주어졌다. 여성단체 ‘살림’과 법무법인 ‘한올’의 도움으로 법률 지원도 이뤄졌다. 새로 선임된 변호인은 친모에게 “죄를 덜어주기보다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변호 취지를 설명했다.

이후 친모의 법정 진술이 시작되자 추가적인 사실이 확인됐다. 이에 검찰은 동거녀 부부의 공소장을 변경했다. 고심을 거듭하던 재판부는 잇달아 친모와 동거녀 부부에게도 중형 등을 선고해 일차적 책임 규명을 마무리했다.

다만 친모의 무책임과 동거녀의 탐욕 등을 단죄한다고 해도 가을이 사건의 비극성 자체가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을이는 학대 속에서 살다 지난해 12월 14일 만 4세 나이에 7kg 체중으로 숨졌다. 부검 뒤 친부에게 인계돼 화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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