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할수록 올라가는 가치’ 쇤브룬 궁전에 에어컨 없는 이유 [부산 청년작가, 유럽에 가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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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스트리아 빈
음악의 도시로만 알았는데 박물관 보고였네!
클림트 ‘키스’ 보유한 벨베데레 올해 300주년
쇤브룬 정원 여름밤 음악회는 빈필 무료 연주
엄숙한 박물관 카페지만 클럽 변신하는 날도

올해로 건립 300주년을 맞은 오스트리아 빈의 벨베데레 입구 300주년 조형물에서 '부산 청년작가 탐방단' 일행이 재미난 포즈를 취했다. 올해로 건립 300주년을 맞은 오스트리아 빈의 벨베데레 입구 300주년 조형물에서 '부산 청년작가 탐방단' 일행이 재미난 포즈를 취했다.

부산 청년작가 8명과 함께한 ‘해외 문화 탐방’에서 오스트리아 빈(영어명 비엔나) 일정 대부분은 미술이나 건축 관련 투어였다. 특히 200여 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화려한 궁전 박물관(미술관)을 잇달아 방문하면서 ‘음악의 도시 빈’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손유하 작가(한국화)는 “오스트리아는 미술학도라면 방문할 수밖에 없을, 사실 예술가라면 한 번쯤 꼭 가야 하는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그림은 실제로 보아야만 그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렇다. 빈은 음악인뿐 아니라 미술인들에게도 꼭 가봐야 할 도시다. 문화 인프라 등 주요 항목을 지표 삼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를 선정할 때 빈이 최근 수년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빈으로 여행을 떠난다.

빈 미술사 박물관에서 전시를 즐기는 관람객들. 김은영 선임기자 빈 미술사 박물관에서 전시를 즐기는 관람객들. 김은영 선임기자

빈에만 107개 박물관 운영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권력의 척도가 얼마나 많은 미술 작품을 소유하고 있느냐로 결정되던 시대가 있었다. 유럽 최대 가문으로 중앙 유럽과 스페인을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왕가가 있던 ‘황제의 도시 빈’으로 유럽 최고의 미술 작품들이 몰려들었던 것도 어쩌면 당연했을 듯싶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말러 등 독일어권 유명 작곡가들이 생애의 상당 기간을 빈에서 보내면서 수많은 명곡을 발표해 빈은 클래식 음악의 성지가 됐다. 그에 더해 유명 클래식 음악제나 교육을 위해 빈을 찾는 수많은 클래식 애호가나 음악도가 많은 점도 빈을 ‘음악의 도시’ 반열에 들게 했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던, 피상적인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번 탐방에서 깨달았다. 그렇게 해서 내린 짧은 결론은 빈은 음악의 도시인 동시에 박물관의 도시라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통계청에 따르면 빈에는 107개(2021년 기준)의 박물관이 소재했다. 특히 미술사 박물관, 응용 미술관, 벨베데레 미술관, 알베르티나 미술관 컬렉션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니 이번엔 극히 일부만 보고 돌아온 셈이다.


궁전 뒤편 언덕 꼭대기 글로리에테에서 바라본 쇤브룬 궁전 모습. 쇤브룬 궁전은 내부 사진 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 김은영 선임기자 궁전 뒤편 언덕 꼭대기 글로리에테에서 바라본 쇤브룬 궁전 모습. 쇤브룬 궁전은 내부 사진 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 김은영 선임기자
쇤브룬 궁전 정원 모습.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됐다. 이 정원에서 매년 빈 필하모닉 여름밤 콘서트가 무료로 열린다. 김은영 선임기자 쇤브룬 궁전 정원 모습.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됐다. 이 정원에서 매년 빈 필하모닉 여름밤 콘서트가 무료로 열린다. 김은영 선임기자

6세 모차르트의 쇤브룬 궁전 추억

쇤브룬 궁전 방문으로 빈 일정을 시작했다. 18세기 중엽 합스부르크 왕가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여름 별장이자 마리 앙투아네트가 어릴 적 지냈던 곳이다. 우리가 잘 아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여섯 살 때 황실 첫 연주회를 했던 곳도 쇤브룬 궁전의 그 유명한 ‘거울의 방’이다.

3층 황색 건물의 쇤브룬 궁전엔 총 1441개의 방이 있다고 한다. 일반인 출입이 허용된 곳은 40여 개 안팎이었지만, 한 시절을 호령한 한 가문의 품격과 취향을 엿볼 수 있었다. 5남 11녀를 둔 테레지아의 일생 흔적과 근친혼으로 권력을 유지해 온 한 왕가의 일면도 확인할 수 있었다. 1918년 왕가가 붕괴한 뒤 오스트리아 공화국이 출범하자 쇤브룬 궁전은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이번에 쇤브룬 궁전을 방문하고 놀랐던 것 중 하나는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은 점이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궁전이자,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는 곳인데도 말이다. 한여름 기온이 30도를 웃돌 때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사람들에 밀려, 밀려서 궁전 내부를 돌아봤다. 그게 그들이 궁전을 보존하는 방식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신기하고 놀라웠다. 보존할수록 가치가 올라간다는 걸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궁전 뒤로는 광대한 프랑스식 정원이 펼쳐졌다. 화단과 분수, 정교한 조각상이 어우러진 50만 평에 달하는 아름다운 정원은 궁전과 함께 1996년부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곳 정원 음악회도 유명한데 1년에 한 번 빈 필하모닉이 와서 ‘여름밤 콘서트’를 무료로 연다.

문득, 지난봄 부산시민공원 잔디광장에서 열었던 대규모 클래식 콘서트가 생각났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정원에서, 세계 최고라는 빈 필의 여름밤 콘서트가 주는 매력은 분명 다르겠지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부럽지만은 않았다. 참고로 내년 ‘빈 필 여름밤 콘서트’는 6월 8일 토요일 밤으로 정해졌다. 내년 여름 빈 여행을 생각한다면 날짜를 저장해 둬도 좋겠다.


벨베데레 궁전 정원 모습.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됐다. 김은영 선임기자 벨베데레 궁전 정원 모습.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됐다. 김은영 선임기자

클림트 ‘키스’가 있는 벨베데레

쇤브룬 궁전을 떠나 벨베데레로 향했다. 벨베데레는 정원과 두 채의 궁전(상궁과 하궁) 그리고 벨베데레 21(현대미술관)로 나뉜다. ‘좋은(Bel)’ ‘전망(Vedere)’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처럼 궁전과 정원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바로크 양식의 걸작이라 할 만하다. 벨베데레 정원 역시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사보이 왕가 프린츠 오이겐의 여름 별장으로 지어졌다.

오스트리아 빈 벨베데레 박물관(상궁) 전시실에서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작품. 벨베데레 제공 오스트리아 빈 벨베데레 박물관(상궁) 전시실에서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작품. 벨베데레 제공

이곳의 백미는 ‘키스’를 비롯한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구스타프 클림트 컬렉션이다. 특히 2023년은 벨베데레 상궁이 완공 300주년을 맞는 해여서 더욱 의미가 남달랐다. 이 의미는 달리 해석하면 타 미술관으로 대여가 절대 금지된 ‘키스’ 이외의 클림트 작품 다수가 벨베데레로 돌아와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

벨베데레엔 수많은 걸작이 있었지만 클림트의 ‘키스’를 넘어설 수 없었다. 찬란한 금빛이 눈부시게 빛나는 가운데 남녀가 나누는 사랑 앞에서 다들 할 말을 잃었다. 단 한 작품만으로도 벨베데르를 찾을 이유는 충분했다는 게 우리 일행의 전반적인 평가였다.


빈 미술사 박물관 입구 중앙계단 홀 전경. 김은영 선임기자 빈 미술사 박물관 입구 중앙계단 홀 전경. 김은영 선임기자

빈 미술사 박물관의 브뢰헬과 실레

빈 미술사 박물관은 흔히 프랑스의 루브르 미술관과 이탈리아의 우피치 미술관과 비교할 만큼 중요한 미술관이라는 말을 들어서 얼마나 대단한가 기대가 컸다. 루브르나 우피치와 다른 점은 빈 미술사 박물관은 처음부터 미술 작품을 소장하기 위해 지어졌다는 것이다. ‘미술사’ 박물관이란 이름처럼 유럽 미술사를 아우르는 미술품과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부터 18세기 말에 이르는 인류 문명사의 다양한 소장품을 전시 중이다.

빈 미술사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안토니오 카노바의 ‘켄타우로스를 이긴 테세우스’ 조각이 있는 계단 전경. 김은영 선임기자 빈 미술사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안토니오 카노바의 ‘켄타우로스를 이긴 테세우스’ 조각이 있는 계단 전경. 김은영 선임기자

입장객을 맞는 중앙계단 홀부터 압도적이다. 클림트의 벽화 일부와 모자이크 벽 장식 그리고 계단 위 천장엔 프레스코화가 펼쳐지고, 정중앙엔 시선을 압도하는 안토니오 카노바의 ‘켄타우로스를 이긴 테세우스’ 조각이 놓여 있다. 장학민 시인은 “미술사 박물관 정면 계단에서 마주한 켄타우로스를 이긴 테세우스 모습은 문명이 비문명을 이김을 시사한다는 설명처럼 인간이 기록해 나간 문화와 문명의 산물 앞에 절로 눈을 반짝이게 했다”고 표현했다.

벤벤누토 첼리니가 만든 프랑수아 1세의 소금그릇. 빈 미술사 박물관 제공 벤벤누토 첼리니가 만든 프랑수아 1세의 소금그릇. 빈 미술사 박물관 제공

합스부르크 왕가 수집품을 모은 쿤스트캄머(예술의 방)는 2000여 점의 미술품과 애용품이 진열됐다. 벤베누토 첼리니의 유명한 소금 그릇 ‘살리에라’의 화려함이 단연 압권이다.

회화 작품 역시 많이 소장하고 있는데 르네상스 화가 피테르 브뢰헬(브뤼겔) 대표작을 모은 전시실이 눈길을 끌었다. ‘농부의 결혼식’ ‘어린이 놀이’ ‘눈 속의 사냥꾼’은 물론이고 ‘바벨탑’까지 한 자리에서 만났다. 소위 브뢰헬의 걸작을 모아 놓은 방이다.

빈 미술사 박물관이 소장 중인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표 화가 피테르 브뢰헬(브뤼겔)의 '바벨탑'(1563)을 관람객들이 지켜보고 있다. 김은영 선임기자 빈 미술사 박물관이 소장 중인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표 화가 피테르 브뢰헬(브뤼겔)의 '바벨탑'(1563)을 관람객들이 지켜보고 있다. 김은영 선임기자
빈 미술사 박물관이 소장 중인 에곤 실레의 '가족(Family)'. 제각기 다른 인물 시선이 불안감을 극대화한다. 빈 미술사 박물관 제공 빈 미술사 박물관이 소장 중인 에곤 실레의 '가족(Family)'. 제각기 다른 인물 시선이 불안감을 극대화한다. 빈 미술사 박물관 제공

개인적으로는 에곤 실레의 그림에 꽂혔다. 클림트와 더불어 빈의 근대기를 연 천재 화가 에곤 실레 컬렉션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은 레오폴트 미술관(빈)이지만, 미술사 박물관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특히 실레의 작품 ‘가족’ 앞에서 느낀 먹먹함으로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곧 태어날 아기와 아내인 에디트, 그리고 실레 자신을 화폭에 담았는데 시선은 각각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새로운 탄생에 대한 희망치고는 어딘지 모르게 가혹하다. 실제로도 임신 6개월이던 에디트는 스페인독감에 걸려 사망하고, 실레 역시 독감으로 3일 후 눈을 감았다.

미술사 박물관을 돌아 나오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박물관 내 쿠폴라 카페에서 잠깐의 휴식이라도 취하지 못했던 거다. 언젠가, 다시 찾는다면 쿠폴라 카페가 디너 코스를 내는 날이거나 카페가 클럽으로 변신하는 ‘쿤스트샤치(Kunstschatzi)’ 행사일이 될지 모르겠다.


빈 미술사 박물관 전경. 빈 미술사 박물관 제공 빈 미술사 박물관 전경. 빈 미술사 박물관 제공

진짜 공부는 여행을 마친 뒤 비로소 시작

다른 미술관도 마찬가지겠지만, 200년 혹은 300년 넘은 박물관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었다. 빈에서 머문 짧은 시간과 달리 귀국한 뒤 접속한 각 미술관(박물관) 홈페이지에는 현지에 가서 본 내용 이상의 무궁무진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모든 여행이 그렇지만, 진짜 공부는 귀국 후 다시 시작한다는 걸 또다시 실감한다.

청년작가들의 빈에 대한 반응은 어땠을까. 김가영 연극인은 “클림트의 그림은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미술사 박물관 또한 우아하고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미술에 대한 지식이 많이 부족한데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미적 감각이 한 단계 올라간 느낌”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김푸름 바이올리니스트는 “전공이 음악이다 보니 미술관에 갈 일이 많지 않은데 미술관 관람을 하면서 시간이 짧게 느껴져 너무 아쉬움이 컸을 만큼 재밌고 유익했던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변선화 건축사는 “오스트리아는 예술가가 사랑한 도시이자 예술가를 사랑한 도시였다”면서 “도시의 풍경은 여유롭고, 여유는 우리를 머물고 싶게 했다”고 전했다.

음악 국악 연극 무용 문인 화가 건축사 할 것 없이 그들에게 전해진 예술 영감도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빈(오스트리아)/글·사진=김은영 선임기자

※이 기사는 (사)부산예술후원회가 지원했습니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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