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군 최고 통수권자의 의중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김희돈 스포츠라이프부장

해병대원 순직과 수사 과정의 비상식
난데없이 독립투사 흉상이 부른 갈등
군 혼란 매듭지을 통수권자는 어디에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연합뉴스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연합뉴스

“군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여당에 투표하는 것이 군인의 길이 아니겠는가?” 31년 전 일이지만 잊히지 않는 기억이다. 1992년 3월 치러진 제14대 국회의원선거 부재자투표 때의 경험이다.

당시 강원도의 한 보병 사단에 이등병으로 복무 중이었다. 훈련소에 입대한 것은 그해 1월이었다. 그러니까 선거가 열린 3월 24일 기준으로는 자대 배치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참 중의 신참’이었다.

군 장병들의 부재자투표는 실제 선거일보다 며칠 앞서 진행됐다. 그래야 개표일에 맞춰 투표자의 주소지 개표소에 투표지가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표 당일인지 며칠 앞둔 날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중대장인지, 소대장인지, 아니면 행정보급관(인사계)이었는지도 아렴풋하다. 확실한 것은 투표 때 1번을 찍으라는 ‘의중’을 하달받았다는 것이다. 1번 후보는 여당 후보였다.


하달은 ‘정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됐다. 계급사회 최말단에 있던 나에게는 다른 선택이 배제된 명령이었다. 실제로 중대 행정반 안쪽 방에서 은밀히 진행된 부재자투표는 인사계가 두 눈을 부릅뜨고 기표 위치를 직접 확인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공개투표였다. 투표는 군 최고 통수권자의 의중에 복무하는 군인의 애국심을 증명하는 인증 절차였던 셈이다. 선거를 이틀 앞둔 3월 22일 육군 9사단의 현역 소대장 이지문 중위의 폭로 기자회견이 있었지만, 선거는 1번 당의 승리로 끝났다. 이 사건은 군이 관여된 부정 선거의 전형으로 기록돼 있다.

오래전 기억이 떠오른 것은 2023년 맞닥뜨린 상식 밖 군의 행태가 30년 전 그때와 빼닮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채수근 상병 사망사건이 그렇다. 갓 스무 살의 생때같은 해병대원이 폭우로 불어난 강에서 실종자 수색에 동원됐다가 목숨을 잃었다. 사건이 난 경북 예천군 내성천 일대는 당시 유속이 세어 장갑차조차도 물에 들어간 지 5분 만에 뭍으로 나와야 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강 속에 직접 몸을 담가 수색하는 장병들에게는 구명조끼조차 지급되지 않았다. 군인권센터가 발표한 채 상병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해당 부대가 수색에 동원된 사병들에게 전달한 지시는 통일된 복장(빨간색 해병대 체육복 상의) 유지와 웃는 모습 보이지 않기 등 상부의 시선을 의식한 것에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채 상병 사망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비상식은 가관이다. 해병대 수사단이 사단장을 포함한 해병대 지휘부 8명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한 통보서를 경찰에 넘기자 탈이 났다. 국방부 장관의 결재까지 받은 걸 번복하고 회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런데 대령 계급의 박정훈 수사단장은 소를 닮은 사람이었다. 눈치 없게도 상부의 의중에 반하는 길을 우직하게 가려 했다. 그러자 군은 그에게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 혐의를 씌워 입건하고 사전구속영장까지 청구하는 상식 밖의 선택을 했다. 구속영장은 기각됐지만 군이 왜 갑자기 이런 결정을 했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급기야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는냐’는 VIP의 의중이 전달됐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이전 논란은 가량없다. 발단은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돼 있던 독립투사 5인의 흉상을 난데없이 ‘재배치’하겠다고 나서면서다. 그중에서도 홍범도 장군을 콕 찍어 아예 학교 밖으로 내보겠다고 해 더 시끄럽다.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를 이끈 지도자를 소련 공산당 가입 이력이 있다는 이유에서 추방하겠단다. 두 전투는 일제강점기 항일무장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교과서에도 나와 있다. 그래서 박정희 정부는 홍범도 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고, 박근혜 정부는 잠수함에 홍범도함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문재인 정부는 카자흐스탄에 있던 그의 유해를 송환해 국내에 안치했다.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 모신 것은 육사 생도들이 이들의 애국심과 헌신을 새겨 국군의 동량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정부가 바뀌었다고 이런 마음이 바뀔 이유가 없다.

이런저런 군대 이야기로 나라가 시끄럽다. 보수 여당 인사들조차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서는데도 쉽사리 정리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단순히 진보·보수의 대립으로 해석해서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래서인지 세간에는 일련의 논란이 ‘용산의 의중’에서 비롯됐다는 낭설(이라고 믿고 싶다)이 정설처럼 돌아다닌다.

‘공산전체주의’와 대치하는 분단국의 군을 혼란 속에 오래 방치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없다. 뜻하지 않게 꼬인 게 있다면 풀어야 한다. 가장 빠른 방법은 당사자의 한마디이지 싶다. 31년 전처럼, 군이 또다시 기로에 서 있다. 최고 통수권자의 의중을 정확히 밝혀야 할 때다.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