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거대 양당제 폐해 극복 방안은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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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 개편·정당법 개정으로 다당제 구현해야

여당·제1야당 유리한 제도
여야 양당 극한 대립 불러
농어촌 선거구 통합 늘어
수도권·지방 불균형 초래
총선 선거제 개혁 필요성
기득권 사수로 끝날 우려
중앙에 종속된 지역정치
지방자치 발전에 걸림돌
다양성·지역당 추구해야
폐단 해소대책 촉구 필요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원내 비교섭 4당 대표들이 총선 선거제 개편 논의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원내 비교섭 4당 대표들이 총선 선거제 개편 논의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경제 위기와 민생 문제는 안중에도 없는 듯 7개월가량 남은 총선의 기선을 잡으려는 싸움에 사활을 거는 모양새다. 거대 양당은 일부 강성 지지층을 등에 업고 편향적인 진영논리로 상대방을 맹공격하는 이념 과잉도 서슴지 않는다. 오로지 총선 승리를 위한 지지세를 확보하고 결집할 목적뿐이라 그럴 테다.

양당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와 독립군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이전을 둘러싸고 거친 이념 공방으로 정쟁을 벌이던 지난달 28일. 이날 정의·기본소득·진보당 등 야권 4당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재가동해 선거제도 개편을 논의하자고 제안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같은 날 시민단체 부산분권혁신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시민정치 활성화 방안 및 총선 시민의제 포럼’에서도 선거제 개편과 함께 정당법 개정의 필요성까지 제기됐다. 이 같은 주장이 나온 이유는 뭘까.


정치 양극화 조장하는 선거제

우리나라 총선은 한 선거구에서 1위 득표자만 당선되는 승자 독식의 소선거구제다. 1등이 아닌 후보자를 선택한 표는 모두 사표가 되는 것이다. 이는 풍부한 인재풀과 자금력을 바탕으로 당선자를 많이 배출할 수 있는 여당과 제1야당에 유리한 제도다. 두 당이 전국적으로 득표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 나머지 군소 정당은 득표보다 더 적은 의석을 가져가면서 거대 양당제로 고착화돼 극단적인 정치 양극화를 빚는다. 또 선거구마다 당선자를 지지하지 않은 절반가량의 표심은 내팽개쳐져 민심이 왜곡될 우려가 높다.

인구수를 기준으로 획정된 현행 선거구제에도 문제가 있다. 선거인구 상한선(약 27만 명)과 하한선(약 13만 5000명)에 따른 총선 선거구는 총 253개다. 가뜩이나 중앙집권적 정치·행정 체제에서 인구가 많은 수도권과 대도시가 더 좋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내년 총선에 대비해 기존 선거구의 인구 증가로 분할이 필요한 지역은 18곳인데, 이 중 수도권이 12곳이나 된다. 반면 인구 감소 탓에 2개 선거구를 통합해야 하는 곳은 비수도권이 대부분으로 11곳에 이른다. 수도권은 분구에 분구를 거듭하지만, 비수도권은 3~4개 기초자치 시·군이 1개 선거구로 묶여 지역 대표성이 보장되지 않는 곳이 늘고 있다.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 밀양·의령·함안·창녕선거구가 그렇다. 대도시인 부산조차 남구갑과 남구을선거구 통합이 불가피할 정도인 게 비수도권의 현실이다.


지난달 28일 정당법 개정 주장이 나온 부산분권혁신운동본부의 ‘총선 시민의제 포럼’. 강병균 기자 지난달 28일 정당법 개정 주장이 나온 부산분권혁신운동본부의 ‘총선 시민의제 포럼’. 강병균 기자

균형발전 저해하고 정쟁 격화

거대 양당제는 선거구제와 맞물려 비수도권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 채 수도권 일극체제를 심화해 개선 과제로 꼽힌다. 지역구 의석이 253개로 제한된 가운데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선 수도권 국회의원은 늘어나는 대신에 침체나 공동화에 시달리는 비수도권을 대변할 의원은 상대적으로 줄어 지역균형발전을 저해하는 까닭이다. 게다가 지역 정서와 특성이 다른 여러 시·군이 통합된 농어촌 선거구는 당선자의 출신지가 아닌 곳 주민의 소외감과 소지역 갈등을 낳아 현안 해결과 지역 발전을 어렵게 한다.

결국 유권자가 날로 증가하는 수도권에서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거대 양당의 중앙당이 표를 의식해 수도권을 집중 지원하면서 비수도권에 대한 관심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거대 양당제가 수도권 과밀화와 지방소멸을 부채질하는 한 요인으로 지적되는 이유다. 거대 양당은 국가와 국민을 챙기는 일을 앞세우기보다는 집권에 혈안이 돼 극심한 다툼을 끊임없이 일삼으며 무능한 ‘식물국회’ ‘동물국회’를 만든 지 오래다. 이에 따라 여야 협치를 기대할 수 있는 정치는 실종돼 국민의 정치 불신과 혐오감을 키운다. 수도권·비수도권 간 불균형 심화 같은 거대 양당제의 폐단을 해소하기 위해 선거제 개정 등 정치 개혁이 절실하다는 비판이 잇따르는 건 당연하다.

선거제 개편 논의 지지부진

비난 여론에 떠밀린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올 들어 국회 정개특위를 가동하며 선거제 개편 논의에 들어갔으나 비례대표제를 두고 의견 차이가 심해 진척이 없다. 지난 20대 총선 방식인 병립형 비례대표제, 권역별 준연동형제 등 다양하게 제시된 방안은 양당이 유불리를 따지며 현격한 입장차를 보여 길을 찾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소수 정당은 무시됐다. 이 역시 거대 정당제 폐해의 하나다. 공직선거법상 총선 1년 전에 새로 적용할 제도를 확정해야 하지만, 이미 법정 시한을 5개월 넘겼다. 개점휴업 상태인 정개특위가 선거 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뜻을 외면한다는 원성을 사는 대목이다.

그러다 지난 1일 양당이 소선거구제 유지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에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승자 독식과 사표를 완화하는 방안으로 거론된 중·대선거구제를 배제하겠다는 것이라 다른 소수 야당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더욱이 국민의힘은 비례대표 선출과 관련해 기존 준연동형의 폐지와 병립형 회귀를 강력히 원하는 분위기다. 준연동형은 소수 정당의 국회 진출과 사표 방지를 가능케 하며, 병립형은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을 나눠 거대 양당에 유리하다. 이런 이유에서 야권과 시민단체들은 양당이 시간을 질질 끌거나 밀실 협상을 추진하다 총선 시기에 임박해 기득권 사수 쪽으로 야합하진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다당제·지역정치 활성화해야

선거제 개편의 핵심은 정치 양극화와 거대 정당 간 극한 대립을 부추기는 기득권 구도를 타파하는 데 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2020년 21대 총선에서 기득권 유지에 필요한 비례대표 의석을 대거 확보하기 위해 각각 위성정당을 창당하는 꼼수를 부린 바 있다. 이 때문에 야 4당은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방지법 도입을 당론으로 채택할 것을 촉구한다. 일리 있는 얘기다. 개혁은 기득권 포기를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와 정치를 발전시키고 국회를 진정한 민의의 전당으로 만들려면 양당이 사표 축소, 지역 대표성 확대, 비례성 강화라는 대의에 충실한 선거제 개편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마땅하다.

부산분권혁신운동본부의 포럼에서 나온 주장처럼 정당법 개정이 거대 양당제의 문제점 해소와 다당제 구현에 실효적인 대안이 될 수 있어 정치권이 적극 검토할 만하다. 정당법 개정 내용은 작은 당을 제약하는 요건을 완화하고 중앙당을 서울에 두도록 강제한 규정을 없애 정치의 다양성과 지역정당 활성화 기반을 확보하자는 것으로 모아진다. 중앙당이 광역·기초의원 공천권을 휘두르며 지역정치에 간섭하는 상황에서 당이 상식과 멀어져도 순응해야 해 지역민에 밀착된 생활정치와 정책 경쟁을 힘들게 한다. 대구·경북과 광주·전남의 경우 각각 국민의힘, 민주당의 일당제나 다름없는 실정이다. 거대 양당제가 지방자치를 삼키고 있는 셈이다. 그 피해는 비수도권과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과 시민단체들이 총선을 앞두고 거대 양당제 개혁의 목소리를 높이고 힘을 모아 여야를 압박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시민정치의 역할이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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