벡스코, 내부 문제로 정전 땐 스프링클러 안 터진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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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설계상 비상발전기 반쪽 작동
외부 전력 끊길 때만 가동 ‘한계’
소방시설도 먹통 대형 피해 우려
코엑스 등 무정전 시스템과 대조
사고 터지자 재설계 ‘뒷북 대응’도

지난 1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정전으로 한 전시관 참가 업체의 기계가 고장 나 체험 행사가 전면 취소됐다. 일부 홀에서는 하루 종일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아 찜통 속에서 행사가 진행됐다. 독자 제공 지난 1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정전으로 한 전시관 참가 업체의 기계가 고장 나 체험 행사가 전면 취소됐다. 일부 홀에서는 하루 종일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아 찜통 속에서 행사가 진행됐다. 독자 제공

벡스코에서 내부 문제로 전기가 차단될 경우 비상발전기 가동 등 추가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비상발전기가 작동하지 않을 때 소방시설도 함께 먹통이 돼 화재가 나면 대형 인명 피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동북아 전시·컨벤션 중심지 지위를 노리는 부산의 위상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6일 〈부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1전시관에서 지난 1일 발생한 정전 사태(부산일보 9월 4일 자 3면 보도)의 원인은 한전 등 외부 전기 공급 시스템의 문제가 아닌 내부 시설 문제로 나타났다. 앞서 지난 1일 오전 9시 51분께 벡스코 1전시관에서 ‘부산국제환경에너지산업전’, ‘2023 부산국제의료관광컨벤션(BIMTC)’ 개막식, ‘제20회 부산국제음식박람회’ 개막식 리허설이 진행되던 중 8분간 정전이 발생했다.

벡스코 비상발전기는 한전에서 내부로 들어가는 전기 인입단 방면에 설치돼 외부 전기 공급이 중단될 경우에만 가동되도록 설계됐다. 이번 정전 사태처럼 벡스코 시설 내부 원인으로 전력이 차단될 경우 비상발전기가 가동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벡스코 측은 이에 대해 “정전이 났을 때 내부 비상발전기를 가동하는 중에 한전 등 외부 전력이 투입되면 두 전원이 충돌하면서 발전기 고장 등 2차 사고를 낼 위험이 있다”며 외부 전력 공급망이 통하는 곳에만 비상발전시스템을 설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문제는 이처럼 비상발전기가 작동하지 않을 때 화재에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비상발전기가 돌지 않으면 스프링클러나 소화전 등에 물을 공급하는 펌프도 작동을 멈추게 된다. 대형 화재로 번지는 걸 막기 위해서는 초동 조치가 중요한데, 현재 설계상으로는 내부 문제로 정전이 되면 모든 소방시설이 무용지물로 변해 대형 인명 피해 발생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까닭에 벡스코 외에 서울 코엑스(COEX), 대구 엑스코(EXCO),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KINTEX), 경남 창원시 세코(CECO) 등 다른 대규모 전시·컨벤션시설은 전력 공급이 중단돼도 각종 전자장비가 멈추지 않도록 전원을 공급해주는 무정전 시스템(UPS)을 최초 건물 설계 때 도입하거나 정전 방지 시스템을 중도 보완해 운영 중이다.

벡스코 측은 구체적인 원인을 파악한 뒤 정전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재설계에 나선다는 입장이지만 막대한 혈세가 투입되는 것 외에도 실제 설비를 고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벡스코가 지금까지 안일하게 시설을 관리하다 문제가 터지자 ‘뒷북 대응’에 나선다는 비판이 나온다. 벡스코가 ‘세계 유수의 초대형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유치·개최한 다년간의 노하우와 차별화된 운영 전략’을 강조하지만 이번 정전 사태로 최소한의 이용객 안전조차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마이스업계 관계자는 “부산 최고의 컨벤션 시설을 자신하던 벡스코의 민낯이 드러난 사고”라면서 “화재라도 발생해 대형 사고로 이어졌으면 2030세계박람회 유치 2개월여를 앞두고 큰 악재가 됐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시설 운영의 기본적인 역할을 등한시하고 이른바 돈이 되는 전시 기획 사업에만 혈안이 된 결과물”이라며 “지금이라도 벡스코가 제자리를 찾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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