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에 저항하는 실천 지구 살릴 상식적인 대안” [로컬이 미래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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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를 만나다

노르웨이서 잡은 생선 중국 가공 역수입
1만 6000km 왕복하는 과잉 무역 성행
기후위기 등 인류 위협 범인은 ‘세계화’
라다크 세계화 10년 안 돼 황폐화 목격
수도권 집중·양극화 한국만의 문제 아냐
지역화에 중점 둔 글로벌 운동 동참해야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로컬퓨처스 대표는 규제와 세금을 피해 막대한 부를 취하면서 지역을 황폐화시키는 글로벌 기업 주도의 세계화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로컬퓨처스 대표는 규제와 세금을 피해 막대한 부를 취하면서 지역을 황폐화시키는 글로벌 기업 주도의 세계화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세계화로 전 지구가 몸살을 앓는다. 모두를 잘살게 해줄 묘약으로 여겨졌던 서구식 민주주의와 합리적 자본주의로 포장된 세계화의 실상이 일부 글로벌 기업과 거대 은행의 배만 불리는 구조에 불과했다는 걸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했다. 장거리 과잉 무역은 지역의 건강한 농업과 경제 선순환을 황폐화시켰고, 사람들은 경쟁으로 가득한 도시로 내몰렸다. 한국은 도시화, 그중 수도권 집중으로 몸살을 앓는다. 부동산과 교육 문제, 양극화와 인간소외는 모두 하나의 원인, 즉 세계화로 연결된다. 세계화에 맞서 로컬(지역)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77)를 지난달 2일 영국 데번주 토트네스에서 만났다. 그녀는 고전이 된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와 〈로컬의 미래〉 등을 쓴 저자다. 인터뷰는 통역 없이 영어로 진행했다. 그녀가 라다크에서 그랬듯, 그녀의 이야기를 전달자 없이 오롯이 듣고 독자에게 전달한다.

“한국의 잘못이 아니에요.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은 결코 한국 문화의 탓이라거나 한국인의 역량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에요. 세계화 때문이에요. 대부분의 정부가 지지하는 글로벌 경제 시스템이 문제예요. 한국에서는 많은 측면에서 더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이를 깨닫고 '지역화(현지화)'로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어요.”

1975년 인도 지역인 히말라야 라다크에 첫발을 디딘 이후 50년 가까이 지역화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온 힘을 쏟아온 로컬퓨처스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대표는 현재 한국사회가 겪는 많은 문제가 세계화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여러 문제가 겉으로는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하나로 연결돼 있고 그 핵심에 세계화가 있다는 진단이었다.

그녀는 한국을 잘 알고 있었다. 따로 설명하지 않았는데도 한국이 겪는 문제를 술술 풀어냈다. 실제 그녀는 전북 전주시에서 열린 ‘행복의 경제학 국제회의 전주’에 기조연설자로 참여하는 등 꾸준히 한국에 관심을 가져 왔다.

“한국이 현재 겪는 과도한 수도권 집중과 양극화, 인간소외 같은 문제는 영국, 스웨덴, 미국, 스페인 등 모든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만 원인을 찾으려고 하면 힘들다”는 호지 대표의 조언이 이어졌다. 국내의 수많은 전문가와 행정가가 사안 하나하나마다 붙어 해법을 찾지만 좀체 풀어내지 못하는 문제들인데, 외부인인 호지 대표의 시선이 머문 곳은 달랐다. ‘문제는 거기가 아니라 여기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세계화는 기업화 대신 쓰는 암호명

“사람들을 도시로 욱여넣는 기업들 때문에 일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게 되는 것이지, 원래 일자리는 부족한 게 아니에요. 식량을 기르고, 음식을 만들고, 집을 짓고,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얼마나 많나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 대신 의미 없는 일을 하도록 강요받고 있어요. 글로벌 기업들은 소비를 유도해 사람들로 하여금 얼마 안 돼 새 차를 또 사고 싶게 만들고요. 패션을 1년에 한 번 이상 바꾸도록 만들어요. 그것은 당신이 계속해서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을 갖도록 강요하는 기계와도 같아요. 정부 정책 또한 이러한 소비만이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광기 어린 믿음으로 연결돼 있어요. 소셜미디어와 각종 미디어는 어린 아이들까지 비교와 경쟁으로 내몰고요.” 비교와 경쟁을 통해 사람은 나고 자란 지역에서 형성한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다.

그녀는 라다크에서 경제 발전의 파괴적인 위력을 직접 목격했다. 경제 체제는 힘을 중앙에 집중시켰고, 교육의 기회와 일자리를 인위적으로 줄여 치열한 경쟁을 조장했다. 아울러 아이들의 정신에 깊이 침투해 보편적인 사랑과 인정의 욕구를 소비 욕구로 왜곡시켰다. 결국 라다크는 세계화에 발을 디딘 지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우울증, 자살, 폭력 사태에 휩싸였고 자연도 황폐해져 갔다.

폴 헬러 전 캐나다 부총리는 “세계화는 기업화 대신 쓰는 암호명이다. 글로벌 자본과 거대 기업이 직원에게 정당한 임금을 주고 싶지 않아서, 도로를 보수하고 공원을 유지하고 노인과 장애인에게 연금으로 돌아가는 세금을 내고 싶지 않아서 세상을 재편하려고 꾸미는 시도”라고 했다. 그녀 또한 이를 인용하며 작금의 기후위기, 식량위기를 비롯해 인류를 위협하는 문제의 핵심에는 결국 세계화가 있다고 했다.

“노르웨이에서 파는 대구 필레는 현지에서 잡은 대구를 중국으로 수출해 가공한 뒤 다시 노르웨이로 수입한 제품이에요. 생선 하나가 1만 6000km를 왕복하는 셈이죠. 호주산 견과류도 중국에 가져가 껍질을 깐 뒤 다시 호주로 가져가고요. 영국산 새우도 태국에서 껍질을 제거해 영국으로 다시 가요.” 이처럼 장거리 과잉 무역은 기후위기를 가속화한다. 그녀는 불필요한 무역과 운송을 중단하면 탄소 배출량을 체계적으로, 빠른 속도로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유럽에서 운송세 부과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오렌지나 아보카도를 먹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반경 80km 안에서 생산할 수 있는 밀이나 쌀, 우유처럼 그들에게 필요한 기본 식량을 수천km 떨어진 곳에서 수입하지 말자는 것이에요.” 영국만 해도 평균적으로 한 해에 우유 수백만L와 밀, 양고기 수천t을 수출하는데, 거의 똑같은 양을 수입한다.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거대 농장보다 작은 농장 생산성 높아

“현재 대부분 국가의 무역 조약에서는 글로벌 기업이 완전한 자유를 갖도록 정부가 동의해주고 있어요. 자유 무역에는 정부의 간섭이나 방해가 전혀 없어요. 반면 한국, 영국 등 모든 정부는 지역 기업, 국내 기업을 규제하고 있어요. 이들 기업은 각종 규제와 세금에 묶인 반면, 글로벌 기업은 규제도 없고 세금도 없어요.” 그리고 그것이 완전히 왜곡된 경제적 경쟁의 장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의미 있는 방식으로 무언가를 하려면 가시적인 국제 조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대부분 대규모 단일 품종 재배의 생산성이 높은 것으로 알지만, 실은 작은 농장에서 다품종 재배하는 게 토지, 물, 에너지 단위당 생산성이 3~5배가량 높다고 했다. 거대 온라인 기업 아마존에서는 소매 매출 1000만 달러당 약 14명을 고용하지만, 시내 중심가 상점에서는 같은 소매 매출을 기준으로 했을 때 47명을 고용할 수 있다. 차익은 모두 글로벌 기업이 가져간다.

“한국인들이 정부와 개별 기업, 지도자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광기 어린 글로벌 경제 시스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세계화가 아닌 지역화에 중점을 두는 글로벌 운동에 동참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차원에서 그녀는 한국의 역할을 기대했다. 그녀는 오는 29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영국 브리스톨에서 개최되는 '플래닛 로컬 서밋'(Planet Local Summit)에 한국인이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행히 그녀는 매년 지역화를 실천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고 했다. 공동체도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특별히 로컬 푸드, 파머스 마켓과 관련된 이니셔티브가 계속되기 때문에 매우 고무적이라고 생각해요. 세계화에 저항하고 로컬은 부활시키는 양 갈래 해법이 세상에 더 많아져야 해요. 지역화는 글로벌 경제가 입힌 손상을 만회하는 가장 전략적이면서도 효과적이고 상식적인 방법이니까요.”

어쩌면 그것은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사진은 ‘작은 티베트’로 불리는 라다크 사람들과 함께 웃는 호지 대표. 사진은 ‘작은 티베트’로 불리는 라다크 사람들과 함께 웃는 호지 대표.

■생태환경 활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언어학자이자 작가, 영화 제작자, 생태환경 활동가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국제 비영리 단체인 로컬퓨처스(전신 라다크 프로젝트)의 창립자다. 로컬퓨처스는 지역 커뮤니티와 지역 경제를 강화해 생태적, 사회적 복지를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됐다.

로컬퓨처스는 세계 지역화의 날, 라다크 프로젝트, 플래닛 로컬 등을 진행하며 지역화를 위한 연대에 힘쓰고 있다.

호지 대표는 '작은 티베트'로 불리는 인도 라다크의 전통과 변화에 관한 이야기인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등의 저자다. 그녀는 라다크가 외부 세계에 개방된 직후 영화팀 일원으로 라다크를 방문했다. 이곳에서 3년을 보내며 언어를 배웠고, 이후 급격한 변화를 관찰해 책을 썼다. 책은 4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의 독자를 만났다. 한국에서만 45만 부 이상이 팔렸다.

그녀는 영국계 스웨덴인으로 영국 런던대학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언어학을 전공했다. MIT에서 '이 시대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놈 촘스키와 함께 공부했으며,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쓴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의 이름을 딴 슈마허대학 강단에 서기도 했다. 그녀의 책과 영화, 강연 등은 제인 구달, 달라이 라마, 찰스 3세, 인디라 간디 등을 포함해 다양한 국제 인사의 지지를 받아왔다. 그녀는 문화·생물 다양성의 활성화와 지역 공동체 강화에 기여한 공로로 이른바 ‘대안 노벨상’인 ‘라이트 라이블리후드상’ ‘아서 모건상’ ‘고이 평화상’ 등을 수상했다.

데번(영국)/글·사진=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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