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침몰 우키시마호, 누구의 역사인가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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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선자 명부 최초 확보한 ‘후세 유진’ 씨
지쳐가는 유족 일으키고 사건 재이슈화
마이즈루모임은 사망자 명부 원본 간직
한국 정부, 무관심 넘어 일본 입장 대변

지난 24일 ‘우키시마호 승선 명부’라는 제목으로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그는 일본의 독립기자 ‘후세 유진’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우키시마호의 명부의 건으로 기사로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툰 한국어 문장 속에서도 정중함이 묻어났다.

후세 씨는 전날 정보 공개 청구를 통해 일본 후생노동성으로부터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를 받아낸 인물이었다. 한국인 강제징용자 수천 명을 태운 우키시마호는 1945년 8월 24일 의문의 폭발과 함께 일본 마이즈루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그간 일본 정부는 승선자 명부가 배 침몰과 함께 사라졌다고 주장했지만, 후세 씨가 이를 뒤집는 문서를 확보한 것이다.

일본 교도통신이 이를 즉각 보도한 데 이어 본보를 포함한 국내 언론도 집중 조명했다. 80년 가까이 지쳐 있던 유족도 다시금 사건 해결에 대한 의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후세 씨가 잊혀 가는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에 새 활력을 불어넣은 셈이다.

그런 그가 박수를 받기도 전에 먼저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일면식도 없는 타국 기자에게 말이다. 마치 ‘자기 역사’를 알리기 위해 함께 힘써준 것이 고맙다는 듯 보였다. ‘남의 역사’인양 우키시마호 사건을 외면해 온 대한민국의 한 언론인, 시민으로서 부끄러웠다.

우키시마호 승선자뿐 아니라 524명의 사망자 명부도 일본의 한 시민단체가 현지 사찰로부터 넘겨받아 보관 중이다. 지난해 일본 교토지역 교사들로 구성된 ‘마이즈루모임’ 사무실을 찾았을 때 명부 원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나다 시게루 회장은 캐비닛 안 흰색 한지로 고이 싸인 명부를 두 손으로 조심히 꺼내 내려놓았다. ‘우키시마마루 사몰자 명부’라 적힌 서류는 색이 바래고 곳곳이 해지는 등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마이즈루모임의 캐비닛은 그야말로 ‘보물 창고’였다. 1952년 1월 인양 후 바로 서 있는 배 사진, 사건 관련 신문 스크랩 등 우키시마호 참상을 기록·규명할 유산으로 가득했다. 당시 시나다 회장은 취재진에게 우키시마호 기획이 실린 〈부산일보〉 신문을 제공해 줄 수 있느냐며 간곡히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부산에 우키시마호 기념 공원이 생긴다면 이 모든 자료를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우키시마호 승선자, 사망자는 대부분 ‘한국인’이다. 그들은 국가의 부재로 인해 가족을 등지고 타향 길을 떠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다. 해방의 기쁨을 안고 배에 탄 수천 명의 동포가 일본 앞바다에 잠겼지만, 한국 정부는 또다시 부재했다. 진상 규명과 피해자 신원 확인에 가장 필요한 승선자, 사망자 명부의 존재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유족들이 79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인의 이름 ‘석 자’를 찾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것을 보면서도 뒷짐만 지고 있는 모습이다.

일본에서 직접 승선자, 사망자 명부를 찾아줬음에도 ‘무관심’은 여전하다. 행정안전부는 이번에 공개된 승선자 명부를 언제 확보하느냐는 질문에 “(명부의)실체부터 확인해 봐야 한다”며 또다시 물러섰다. 한 발 더 물러가 “일본 정부는 실제 승선자 명부가 아니라, 사건 이후 조사하면서 작성한 명부라고 하지 않느냐”며 일본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사고 이후에 조사했든 아니든 간에 일본이 공개한 ‘승선자 명부’임이 틀림없다면 하루빨리 이를 확보해 추가 피해자 신원을 파악해야 한다. 현재 후세 씨가 확보한 명부는 이름, 본적, 소속 등 개인정보가 모두 가려졌다.

더불어 일본 정부를 대변할 게 아니라 승선자 명부를 둘러싼 그들의 은폐 의혹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의혹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그간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을 둘러싼 일본 정부의 사후 대응 전반이 의심받을 수 있다. 미제로 남았던 우키시마호 사건이 새 국면에 돌입하는 셈이다.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은 강제징용, 해방, 귀향 동포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픔을 모두 담고 있는 ‘대한민국 역사’다. 한국 정부는 역사를 규명·기록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일본 사찰과 마이즈루 앞바다에 남아 있는 유해 봉환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세계 최대 해양참사로 꼽히는 사건이지만, 여태껏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등재되지 않았다. 피해자를 추모하고 사건을 알릴 번듯한 기념공간조차 없다. 시민 모금으로 추모비를 세우고, 우익단체의 ‘페인트 테러’에도 굳건히 기념공원을 지켜온 마이즈루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우키시마호 역사를 인양할 마지막 기회가 마련됐다. 사건을 기억하는 생존자와 유족 모두 고령에 접어들었다. 더는 그들의 외로운 싸움으로 끝나지 않도록, ‘고국’이 앞장서 주길 기대한다.

이승훈 해양수산부장 lee88@busan.com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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