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대북 확성기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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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 넘어가던 즈음이다. 전방에서의 군대 생활을 떠올리면 철책선을 넘나들며 울려 퍼지던 대남·대북 방송의 기억을 빼놓을 수 없다. 호전적으로 들리던 북한 대남 방송과 간드러진 톤의 남한 대북 방송이 묘한 불협화음을 이뤘다. 대남 방송이 일방적 체제 선전이었다면 대북 방송은 중간중간 가요가 섞였다. 주로 여성 가수 노래로 기억된다. 당시에는 다소 유치하고 무슨 효과가 있나 생각했는데 아직도 이를 두고 남북 간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걸 보면 무시 못 할 게 심리전인 듯하다.

심리전은 고대 부족사회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오래다. 부족들이 전투에 나갈 때 몸에 그리는 문양이 상대 기를 꺾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니 말이다. 한나라 유방과 초나라 항우의 전쟁에 등장하는 ‘사면초가’도 역사 속 유명한 심리전이다. 현대적 심리전의 시작은 2차 세계대전 말 무렵인데 전장에서 본격 활용된 게 한국전쟁이라고 한다. 남한과 유엔군, 북한과 중공군이 주고받은 전단만 수억 장에 달해 ‘삐라 전쟁’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당시 북한군 삐라 중 유엔군을 겨냥해 매릴린 먼로 사진과 함께 ‘당신이 돌아오길 기다린다’는 문구가 새겨진 것도 남아 있다.

분단체제가 고착화하면서 상대를 향한 확성기 방송이 본격화한다. 북한군이 최초로 1962년 군사분계선 일대에 확성기를 설치하고 방송을 시작했고 이듬해 우리 군도 대북 확성기 방송으로 맞대응하면서 본격적 심리전이 벌어졌다. 1972년 박정희 정부 때 7·4 남북공동성명으로 중단됐다 1983년 아웅산테러로 재개됐다. 2004년 6·4 합의로 제거됐으나 2015년 북의 목함지뢰 매설 사건을 계기로 다시 시작됐다. 2018년 ‘판문점 공동선언’에 따른 확성기 철거가 평화의 상징처럼 됐다. 확성기가 남북 긴장의 바로미터였던 셈이다.

확성기 역사는 남북 간 경제적 격차의 역사이기도 하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북한이 경제력을 앞세워 대남 방송에 공세적이었다. 이제는 전세가 역전돼 북한이 우리의 성능 좋은 대북 확성기 방송에 총격으로 대응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한다. 우리 군이 남북 간 선전 방송을 대표적 비대칭 전력으로 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북한의 두 차례에 걸친 대남 오물 풍선 살포에 대응해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 카드를 꺼내 들자, 북한이 즉각 쓰레기 살포 중단을 선언했다. 우리의 전력 우위를 확인하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남북 간 긴장이 갈수록 높아지는 건 우려스럽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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