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발로 뛰어 복원한 ‘75년 부산 향토사’ 정리에 매진” 주영택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장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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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성 관아·해월사 터 발견
역사 퍼즐 빈 공간 메워
발굴한 부산 유산 목록 29건
향토사 저서만 40여 권 달해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주영택 원장은 문헌과 고문서를 뒤져 사료를 찾고 기록에 없는 것은 발로 뛰어 부산 향토사를 복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주영택 원장은 문헌과 고문서를 뒤져 사료를 찾고 기록에 없는 것은 발로 뛰어 부산 향토사를 복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

말마다 부산의 향토사가 묻어 나왔다. 집은 쓴 책과 모은 책, 신문, 자료들로 빼곡했다. 박물관을 방불케 했다. 모든 글과 말에는 ‘부산’ 글자가 안 들어간 것이 없었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주영택(88) 원장을 지난 3일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한평생 부산 향토사와 함께했다. 부산 해운대에서 나고 자란 그는 역사학을 전공하고 40년 동안 교단에서 역사를 가르친 뒤, 퇴직 후에는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을 열어 부산·경남 향토사 연구에 매진했다.

부산 향토사 연구만 75년. 주 원장은 문헌과 고문서를 뒤져 사료를 찾고 기록에 남지 않은 것은 발로 뛰어 비어 있는 흔적을 직접 찾았다.

주 원장이 찾아낸 부산 유산 목록은 총 29건이다. 향토사 관련 저서 40여 권을 냈으며 강의록도 200개에 달한다. 그의 노력 덕에 해운대, 금정산과 범어사, 옛 동래, 가마골 부산의 새로운 모습이 드러났다. 이제 그는 부산 향토사의 정수만 남기는 정리 작업을 하고 있다.

“글을 쓸 수 있는 문복(文福)을 하늘에서 주신 게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어요. 이제 와 다시 예전 글을 보니 내게 어떻게 이런 문장이 나오고 이런 순간을 겪었는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가 기록한 장면은 이런 것이다. “금정산에서 낙동강 달빛이 가장 많이 솟는 곳이 해월사예요. 모래사장에서 바늘 하나 찾는 심정으로 밤낮없이 그 절터를 파헤치고 다니다 풀숲에서 해월사 현판을 찾았을 때, 그때를 잊을 수가 없죠. 이 세상을 내가 다 가진 듯한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피곤해서 눈이 감기는데 마냥 웃음이 나왔어요.”

어렵게 찾아낸 부산 보물들만큼이나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그는 생생히 기억했다. 그들 덕에 비어 있던 역사 퍼즐의 빈 공간을 채운 적이 숱하다. 그는 책에도 사료에도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를 사람으로 얻었다. 조선시대 금정산성을 방어했던 2개 사찰 중 기록으로만 전해오던 해월사 자리나 산성 죽전마을의 금정산성 관아 자리도 그렇게 찾은 보물들이다.

“일단 모르면 나이 많은 사람을 찾아갔어요. 여기 지명을 뭐라고 불렀습니까 물으면 다들 신나서 얘기해 줬어요. 역사가 어려운 게 지질학, 고고학, 마을 역사 다방면으로 알아야 하는 거라 돌멩이 하나 주워서 이게 무슨 돌이고 성분이 뭔지, 어떻게 쓰였는지 물으려고 사람들을 숱하게 만나러 다녔어요. 나무꾼부터 공무원, 동네 어르신, 교수. 술 사주고 밥 사주며 다양하게도 만났는데, 이제는 다 돌아가신 분들이죠. ”

평생에 걸친 그의 역사 기행을 봐 온 사람들은 주 원장이 지닌 이야기가 아직도 무궁무진하다고 말한다. 딸 주희진(53) 씨에게 어릴 적 가족 나들이는 역사 답사였다. 주 원장의 답사길을 곁에서 봐 온 주 씨는 “평생 아버지가 향토사에 몰두하시는 것을 봐 왔다. 아버지가 연구한 데 비하면 밖으로 드러난 저서와 기록은 적은 수준”이라며 “아버지 안에 들어 있는 향토사 기록들은 대도서관 서너 개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풀지 못한 이야기를 부산에 남기고 가는 것이 주 원장의 남은 목표다. 그는 역사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것”이라 말했다. 부산에서 찾아낸 역사의 흔적이 앞으로 부산에 살아 갈 사람들의 시행착오를 줄여줄 수 있기를 그는 바란다.

주 원장은 지난해 평생 수집한 도서와 지도 등 1400점을 부산도서관에 기증한 데 이어 남은 책들도 모두 도서관과 지인에 보낼 예정이다. 그는 “지금까지 하늘에서 살게 해 준 덕에 정리를 하고 갈 수 있는 것, 참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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