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된 해외 입양인 뿌리 찾기 ‘러시’… 성공률은 단 3% [귀향, 입양인이 돌아온다]
1970~80년대 해외 입양아 20만여 명
친부모 찾기 지난해에만 2720건 달해
개인정보 비공개 법에 막혀 거의 실패
1970~1980년대 한국은 20만여 명의 아이들을 해외로 떠나보냈다. 가난한 나라를 떠나 선진국에서 살게 된 것을 감사하라 했다. 그 아이들이 중년이 돼 뿌리를 찾으려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최근 5년간 공식 기록으로 추적에 나선 해외 입양인이 1만여 명에 달한다. 그 숫자는 빠르게 늘고 있다. 한해 1500여 건 수준이던 청구 건수는 지난해 2720건을 기록했다. 역대 최대치다.
기록에 잡히지 않은 해외 입양인들도 이역만리에서 한국의 친부모 추적에 나서고 있다. 정부의 법·제도 미비 속에 입양인들의 친부모 추적 수요는 추적 대행 사적 에이전트까지 만들어냈다. 이들은 사적 에이전트에게 수백만 원을 지불하기도 하고, 생업을 접고 직접 찾아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해외 입양인의 추적 성공률은 극히 낮다. 업계에서는 통상 3%에 불과하다고 본다. 성공 여부를 장담하지 못한 ‘뿌리 찾기 도박’에 뛰어드는 해외 입양인만 해도 수십만 명에 달한다.
해외 입양인들이 40~50년이 흐른 뿌리를 찾아나선 이유는 서로 겹친다. 이들에게 한국에서 태어나 보낸 3~4년은 평생 안고 가는 구멍이다. 입양인들은 뿌리를 모른 채 본인으로부터 다시 새 뿌리를 내리기는 어렵다고 호소했다. 4살에 네덜란드에 입양됐던 요한(48) 씨는 첫 아이가 4살이 되던 해, 아이의 또렷한 의사 표현을 보면서 무너졌다. 그는 “4살에 아이 자아가 형성되고 의사를 표현하는 걸 보면서 내가 같은 나이에 보육원에서 ‘가고 싶지 않아, 여기에 있고 싶어’ 말했을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후 일과 가족에 소홀해졌고,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
50여 년 전 한국은 수송기에 아이들을 태워 떠나보내며 입양 문제에 마침표를 찍었지만, 중년이 된 입양인들에게 입양 기억은 일상을 유지하려는 현재진행형 몸부림이다.
절박한 심정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해외 입양인에게 국내 법·제도는 장벽이다. 입양인들은 복지원과 한국사회봉사회(KSS) 등을 전전하며 기관마다 정보공개를 청구해야 한다. 어렵사리 기록을 찾아도 기록은 허술하기만 하다. 입양특례법상 친부모 개인정보는 비공개가 원칙이라는 법 때문이다. 국가는 철저히 빠져있다. 현행법에서 입양 기관의 장은 해외 입양인을 위해 모국방문사업 등을 실시해야 한다고 명시했지만 그 주체나 방법이 없고, 어떤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지 논의도 없다. 해외 입양인은 사비와 발품,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민간단체의 선의에 기대 장막 속 뿌리 찾기를 이어 나간다.
유엔아동권리협약 7조에는 ‘아동이 부모를 알고 부모에 의해 양육 받을 권리’를 규정했다. 하지만 해외 입양인들은 한국을 떠나던 서너 살부터 중년이 된 현재까지 한국에서 부모를 알 권리를 단 한 번도 보장받은 적이 없다. “엄마를 찾으면 그저 잘 살아왔다고, 나는 지금 행복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 말을 해주려고 찾는 겁니다.” 20년 간 뿌리 찾기를 이어왔던 진명숙(43) 씨 얘기다.
〈부산일보〉는 지난 6월부터 두 달간 대표 입양국 네덜란드 각지와 서울 등지를 찾아 해외 입양인 뿌리 찾기 실태를 취재했다. 뿌리 찾기를 시도하는 해외 입양인과 가족 39명을 인터뷰하고, 전문가 16명의 자문을 거쳐 현재진행형인 해외 입양인 뿌리 찾기 실태를 짚는다. 우리가 놓친 아이들에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리가 방기한 이야기다.
암스테르담(네덜란드)=변은샘·양보원 기자 iamsam@busan.com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