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역대급 풍작인데… 내수도, 수출도 신통찮은 굴 업계 시즌 조기 종료?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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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이상 기후 여파 내수시장 부진
일본 등 수출 위축에도 생산량은 늘어
홍수 출하에 10kg 4만 원 ‘가격 폭락’
때 이른 시즌 마감에 지역경제 빨간불

통영시 용남면의 한 굴 박신장. 굴 가격 폭락으로 서둘러 조업을 종료하면서 흥겨운 트로트 메들리로 시끌벅적해야 할 작업장이 쥐 죽은 듯 고요하다. 김민진 기자 통영시 용남면의 한 굴 박신장. 굴 가격 폭락으로 서둘러 조업을 종료하면서 흥겨운 트로트 메들리로 시끌벅적해야 할 작업장이 쥐 죽은 듯 고요하다. 김민진 기자

“올해는 이쯤에서 끝내야 할 듯합니다.” 29일 오전 경남 통영시 용남면의 한 굴 박신장(굴 껍데기를 제거해 알맹이 굴을 생산하는 시설). 흥겨운 트로트 메들리로 시끌벅적해야 할 작업장이 쥐 죽은 듯 고요하다. 며칠 전까지 50여 명의 작업자들로 북적이던 공간엔 차가운 냉기만 가득하다. 굴 더미로 그득했던 작업대는 말끔히 치워졌다. 업주는 “단가가 너무 형편없어 지난주부터 문 닫았다. 일단 중지하고 지켜볼까 했는데, 아무래도 접어야 할 것 같다”고 푸념했다.

경남 남해안 굴 양식업계가 울상이다. 역대급 풍작에 기대에 들떴던 시즌 초반과 달리, 종반으로 갈수록 위축된 소비시장과 공급 과잉 여파로 가격이 폭락하면서 조업할수록 손해인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견디다 못한 상당수 작업장은 일찌감치 일손을 놓은 채 시즌 조기 종료를 고민하고 있다.

굴 양식업계는 통상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6월까지 출하 시즌을 이어간다. 하지만 올해는 주산지인 통영과 고성, 거제지역 굴 박신장 300여 곳 중 절반가량이 이미 시설 가동을 종료했거나 5월 초 중단할 예정이다.

시즌 초반 만해도 업계는 기대 이상의 풍작에 반색했었다. 여름내 태풍이나 이상 고온 피해가 적었던 데다, 긴 장마로 육지에 있던 각종 영양분이 바다로 다량 유입돼 어느 해보다 작황이 좋았다. 그런데 고물가·고금리·고환율·고유가 등 4중고로 인한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소비재 시장이 얼어붙었다.

기호식품인 굴도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김장철 부진이 뼈아팠다. 굴 양식업계는 수도권 김장이 시작되는 11월 중순에서 남부 지방 김장이 마무리되는 12월을 연중 최대 성수기로 꼽는다. 하지만 김치를 사 먹는 가정이 늘어난 데다, 지난 연말 배춧값까지 폭등해 그나마 있던 김장 수요마저 크게 줄었다.

여기에 최근 이상 기후까지 업계를 괴롭히고 있다. 날것으로 먹는 게 일반적인 생굴은 기온이 올라가면 생산‧유통 과정에서 위생 문제가 불거질 개연성이 높아지는데 최근 낮 최고기온이 27도에 육박할 정도로 초여름에 가까워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출 시장 역시 제 몫을 못 하고 있다. 이맘때 자연 감소하는 내수 소비를 뒷받침해 원료 끌어주는 견인차가 일본을 중심으로 한 수출인데, 이 시장이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도 경기 부침이 심해 작년 수출한 재고가 상당량 남아 있다”면서 “수출이 시작돼도 작년보다 20% 이상 물량이 줄 것으로 예상된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10월 열린 ‘2023년 생굴 초매식’ 모습. 부산일보DB 지난해 10월 열린 ‘2023년 생굴 초매식’ 모습. 부산일보DB

이런 안팎 악재에도 생산량은 오히려 증가했다. 굴수하식수협에 따르면 4월 하루 평균 위판량은 60t 남짓이다. 작년엔 40t 안팎이었다. 소비가 신통찮은 상황에 공급만 늘면서 가격은 급락했다. 굴수협 자료를 보면 올해 1월 이후 생굴 위판단가는 전년 동기 대비 5% 이상 떨어졌다. 지금은 여기서 더 폭락해 10kg 들이 생굴 한 상자가 4만 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해 평균 6만 원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인건비 등 생산원가를 고려해 5만 원을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는 어민들 입장에선 밑지는 장사인 셈이다. 수협 관계자는 “지금 가격대에선 차라리 수확을 하지 않는 게 낫다보니 소규모 박신장은 대부분 일을 접고 있다”면서 “소포장 단위로 가공, 유통해 온 중소 가공업체도 상당수가 문을 닫은 상태”라고 전했다.

시즌 단축이 현실화하면서 지역 경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경남지역 굴 산업 직·간접 종사자는 줄잡아 2만여 명. 대부분 일한 만큼 품삯을 받는다. 업계 관계자는 “월수입을 1인당 200만 원씩만 잡아도 400억 원이 넘는다. 이 돈이 돌고 돌며 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경기 위축을 부추기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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