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부산 AI 어디까지 왔나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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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에 마련된 삼성전자 갤럭시 S24 체험 행사장에서 시민들이 AI 실시간 통역 기능을 살펴보고 있다. S24에는 초거대 인공지능(AI) ‘가우스’가 10분의 1로 압축해 탑재됐다. 연합뉴스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에 마련된 삼성전자 갤럭시 S24 체험 행사장에서 시민들이 AI 실시간 통역 기능을 살펴보고 있다. S24에는 초거대 인공지능(AI) ‘가우스’가 10분의 1로 압축해 탑재됐다. 연합뉴스

요즘 어딜 가나 ‘인공지능(AI)’이라는 말이 들린다. 2022년 11월 오픈AI 챗GPT가 선보인 지 불과 1년여. 인공지능은 우리 사회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AI는 일상생활에서부터 산업, 의료, 교육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하면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가전·IT제품 전시회인 CES2024에서도 신제품 키워드는 ‘AI를 통한 일상의 변화’였다. CES에 모습을 드러낸 실리콘밸리 빅테크의 ‘빅샷’ 경영인들은 “와이파이 기술처럼 AI가 고속 확산될 것”이라면서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삶의 질을 향상시킬 미래에 전율을 느낀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사람처럼 움직이고 학습하고 판단하는 AI 로봇도 등장해 고령화, 인구 감소 같은 글로벌 문제 해결과 함께 노동시장은 물론 사회 전반에 걸친 대대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AI 경쟁 무대에서 바라본 부산의 지역 경제는 그 변화가 더디기만 하다.

■부산 기업 AI 도입 부정적

지역 기업들의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에 대한 도입 실태는 실망스럽다. 부산상공회의소가 지역 100개 기업 임원을 대상으로 ‘챗GPT 인식 및 활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챗GPT를 업무상 활용한 경우는 25%에 그쳤다. 또한, 69%가 챗GPT 활용 교육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67.6%가 챗GPT 유료버전이나 업그레이드된 AI 서비스 도입 의향이 없다고 대답했다. 기업경영 및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절반 이상(56.4%)이 부정적 시각을 보였다. 부산상의 기업동향분석센터 정상엽 과장은 “지역 기업 대다수가 제조업 등 보수적인 업종인 탓에 AI 신기술을 받아들이려는 욕구가 크지 않다”면서 “빠르게 대응해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지역 기업만 선도

앞서서 준비하는 기업도 눈에 띄고 있다. 전기자동차 모터 구동장치를 생산하는 코렌스이엠 조용국 회장은 “AI를 지금 현장에 적용하지 않으면, 인구 급감 시대를 맞아 5년 뒤 기업의 생존에 문제가 생긴다”라고 단언한다. 조 회장은 “AI 적용 관련 투자가 지체되면 인력 부족뿐만 아니라, 기술적 격차도 발생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코렌스이엠은 생산라인에 생성형 AI를 접목시켜 불량품 데이터를 축적한 뒤 AI 진단 모델을 통해 고장 발생을 예측하고 생산라인 중단 등을 최소화하고 있다. 품질지수, 알람 발생 빈도, 가동 시간, 수명 예측, 사용 횟수, 생성 데이터, 주기 관측 등 연관성을 AI로 분석해 도출된 결과를 통해 정비, 고장 수리 복구 스케줄 예측까지 하고 있다. 사무자동화에도 LLM(대규모 언어 모델), STT(음성 인식), OCR(광학 문자 인식)을 활용해 회의록 작성, 관련 기사 정리, 이력서 정리 등 일상 업무를 진행한다. 이를 통해 사무직 노동력 투입 시간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였다. 코렌스이엠 조형근 대표는 “이제 AI가 없으면 생산에 문제가 생긴다는 게 현장의 판단”이라면서 “설비에서 축적되는 내부 데이터로 학습된 AI를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자체 LMM(대규모 멀티모달모델)이나 생성형 AI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대표적인 어묵 브랜드인 부산 삼진어묵도 생산 공정에 AI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울산 유니스트와 AI+X 프로젝트를 통해서 어묵에 들어가는 이물질을 걸러내는 데 AI를 집중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박용준 대표는 “어묵의 주원료는 수산물인 연육과 고추 등 농산물이고, 어묵 밀도가 높아 이물질 검증이 쉽지 않다”면서 “금속 검출기와 엑스레이에 접목한 AI에 이물질 형상을 머신러닝 한 뒤 돌이나 나뭇가지, 심지어 낚싯바늘까지 검출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삼진어묵은 향후 전체 제조공정에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신선식품 물류 체계, 유통기한 관리, 발주량 예측 등에서도 AI를 활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뿌리 기업도 걸음마 단계

매출 30억대 규모의 뿌리 기업에서도 AI 도입은 시작되고 있다. 지역에서 자동차용 특수고무 성형 제조업을 하는 경평특수고무는 진공프레스 고무 성형기에 각종 센스를 부착해서 수집한 제조 데이터를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센터로 실시간으로 축적한다. 이어 인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불량률을 낮출 수 있는 최적의 조합 데이터셋을 생성하여 최근에는 대학 연구소와 동종 업계에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클라우드 기반 인공지능 디지털 전환 플랫폼과 설비자동화 회사인 ㈜지에스티 오준철 대표는 “선진국 기업과 경쟁하거나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 생산을 위해서는 품질 신뢰성을 보증하는 센서를 통한 디지털 데이터를 가진 회사만이 경쟁력을 갖는다”면서 “산업 데이터를 가지고 산업현장에서 실제로 살아있는 AI 기반의 성공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마존 쇼핑몰을 통해 미국·일본·싱가포르 등지로 수출하는 발효소스제조 업체의 경우 고객 및 광고 데이터를 챗GPT를 통해 구축해 마케팅에 활용하는 경우도 등장하고 있다.

동의대 인공지능그랜드ICT연구센터 강영진 연구교수는 “챗GPT와 같은 초거대 AI 형태보다는 이를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분야로 지역 산업이 맞춰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실제로 동의대는 산학협력을 통해 재활용 쓰레기 감별기에 AI 비전 카메라를 부착해서 물체 선별 작업에 활용해 효율성을 높이거나, 용접에 관련된 데이터를 만들어 자동 스캐닝을 통해 품질 결함을 찾아내는 초기 AI 기술 사업화에 성공했다.

■인구 감소 대응 위한 생존 방안

코렌스이엠과 협업하는 최성철 부경대 시스템경영안전공학부 교수는 “AI 도입은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인구 감소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라고 단언한다. AI 기반 자동화 플랫폼 학교기업 ‘팀리부뜨’를 운영하는 최 교수는 “청년 인구가 부족한 부산에서는 AI가 인간을 대체한다는 것보다는 부족한 인력 확보 대책으로 봐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역 기업들은 현장 근로자에서부터 무역 보조, 회계전표 관리 등 일반 사무직까지 구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런 추세는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챗GPT 등을 통해 이런 반복적인 사무보조 업무를 옮겨가야 한다는 것.

최 교수는 “AI를 도입하면 인력 구조조정이 아니라, 생산성을 높이고, 담당자가 나가더라도 업무 프로세스가 멈추지 않게 된다”고 조언했다. 또한, 최근 청년세대가 전표 정리 등 단순한 일을 오래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추세에서 AI 적용을 통해 사람이 좀 더 고난도의 업무를 할 수 있게 된다고 부연했다. 실제로 SM그룹 등 대형 해운회사 등에서 사람이 처리하던 전표 입력 등을 OCR과 LLM을 복합한 AI 모델로 해결하고 있다.

최 교수는 “인구 감소 시대에 업무 프로세스를 AI에 맡기는 노력을 지금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한꺼번에 산업 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면서 “기술적으로 솔루션 개발이 가능해진 만큼 개인의 생산성을 늘릴 수 있다는 관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업 문화 변화도 필수

기술적인 발전과 함께 이를 기업에 도입하려는 진취적인 문화가 아쉽다는 쓴소리도 나오고 있다. 부산상의 정상엽 과장은 “지역 기업 임원 등 의사 결정권자들이 AI의 접목과 교육에 대해서 보수적인 탓에 대응이 느린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부산 산업계에 젊은 세대가 계속 빠져나가면서 기업 대부분에서 구성원 연령이 올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고령화된 기업 문화가 AI 등 새로운 기술을 현장에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래 세대에 맞지 않은 보수적인 뿌리 기업 운영 행태가 혁신을 가로막는 상황까지 이르고 있다.

㈜지에스티 오 대표는 “부산 지역 기업과는 달리, 수도권 제조업체의 경우 공정 전체의 AI 접목과 디지털 전환으로 부산하다”고 강조했다. 부경대 최 교수는 “기업 의사 결정권자인 임원이나 대표들이 10년 뒤에 나타날 인구 절벽의 심각성과 품질 경쟁력 향상의 절실함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도 AI 적용 지체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동의대 강 교수는 “지역 기업의 자금 사정이 어려우면서, AI 등에 투자해 기존 라인을 교체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산업의 디지털 전환에 대한 진취적인 문화 확산과 함께 지자체, 중앙정부의 지원 등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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