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 사이버 도박판 개설…억대 송금에 초등학생 이용자도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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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 만든 도박 사이트 관련 범행 개요도. 부산경찰청 제공 중학생이 만든 도박 사이트 관련 범행 개요도. 부산경찰청 제공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직접 만들어 1500여 명을 상대로 억대 도박판을 벌인 간 큰 중학생 등 10대 100여 명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 룰렛, 바카라 등 성인 도박을 그대로 흉내 낸 불법 도박 사이트를 직접 만들고 운영한 ‘총책’이 중학생이라는 점에서, 또 이를 이용한 이들도 대부분 10대 청소년이라는 점에서 충격을 준다. 사이버 도박이 청소년들 사이에 깊숙히 침투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부산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도박장 등 개설, 도박,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성인 총책 A(20대) 씨를 구속하고, 총책 B군과 서버 관리자 C 군 등 16명과 도박 사이트 이용 청소년 96명을 검거했다고 18일 밝혔다. B군 등은 2022년 12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서버 제작 기능이 있는 SNS에 도박 서버를 만든 뒤 또래 집단에 초대 링크 등을 보내 도박 게임에 참여시키는 방법으로 사이트를 운영한 혐의를 받는다. 청소년이 대부분인 이용자들로부터 송금받은 돈은 10개월간 2억 1300만 원에 이른다.

범행은 중학생인 총책 B 군과 고등학생 서버 관리자 C 군의 공모로 시작됐다. 게임과 데이터 복구 등에 관심이 많고 컴퓨터 실력이 상당했던 B 군과 C 군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친해졌고 확장성이 큰 SNS인 '디스코드'에 도박 서버를 만들기로 했다. 코딩 실력이 뛰어난 C 군이 서버 개발·유지 관리를, B 군은 전반적인 운영을 맡았다. 둘은 도박 서버 내 직원 모집 글을 공지하고 공범도 끌어들였다.

B, C 군은 게임머니를 충전, 환전하는 직원도 중학생이나 대학생으로 뽑았고,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돈을 송금받는 은행 계좌 역시 중·고등학생 5명에게 하나당 10만∼20만원에 사들였다. 구속된 성인 총책 A 씨는 애초 도박 이용자였다가 직원 모집 공지글을 보고 지원해 운영자가 됐다.

이들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로, 전화가 아닌 채팅으로만 서로를 상대해 각자가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로 범행을 모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B 군은 특히 자신에 대한 경찰 압수수색이 있은 후 성인 총책 A 씨에게 수사 내용을 공유하며 단독으로 도박 서버를 운영하도록 돕는 등 중학생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치밀하게 범행을 벌였고 직원을 관리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입건된 도박 이용자 대부분은 10대 청소년이었고 초등학생 1명, 여중생 2명도 포함됐다. 한 사람이 베팅한 최다 금액은 218만 원이었고 한 고등학생은 4개월간 325차례 입금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총책들은 검찰 송치가 됐지만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각 경찰서 선도심사위원회로 넘겨졌다. 선도위원회는 여러가지 사항들을 참고해 형사처벌을 할지 훈방 조치를 할지 등을 결정하게 된다.

전병하 부산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팀장은 "청소년들이 SNS 등에서 광고에 현혹돼 불법 도박에 빠지던 방식에서 벗어나 직접 도박 서버를 운영하고 계좌까지 제공하는 지경에 이르러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또 도박사이트 운영에 필요한 웹호스팅 서비스 가입 때 보호자 인증이 가능하도록 해당 기관에 제도개선을 요청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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