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AI 야구 심판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KBO, 올해부터 ABS 1군 리그 적용
"공정성 기대""기술오류 우려" 교차
미래 한국 야구 발전의 마중물 돼야

올해는 한국 프로야구가 획기적 변신을 꾀하는 해다. 볼·스트라이크 자동 판정 시스템(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이 도입되고, 투수의 공 던지는 시간을 제한하는 ‘피치 클록’도 시행된다. 그 밖에 베이스 크기 확대, 수비 시프트 제한 등 새롭게 도입되는 제도가 여럿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11일 이사회를 열어 이를 공식 확정, 발표했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눈길이 쏠리는 것은 당장 개막전부터 적용되는 ABS다. 이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정확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주장과 기술적 오류나 인간적 감성의 부재를 지적하는 견해가 부딪치기 때문이다.


주심의 다이내믹한 '삼진 콜'은 야구가 주는 묘미 중의 하나다. 올해부터는 인공지능(AI) 심판이 한국 프로야구 1군 리그에 공식 적용돼 이런 재미는 사라질 전망이다. 연합뉴스 주심의 다이내믹한 '삼진 콜'은 야구가 주는 묘미 중의 하나다. 올해부터는 인공지능(AI) 심판이 한국 프로야구 1군 리그에 공식 적용돼 이런 재미는 사라질 전망이다. 연합뉴스

■ AI 심판 어떻게 운용되나

주심 대신 기계가 볼과 스트라이크를 판정하는 ABS는 인공지능(AI) 심판 혹은 로봇 심판으로 불린다. 미국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도 아직 공식 도입하지 않았으니, 한국이 어찌 보면 세계 최초인 셈이다. 그동안 고교 야구와 프로야구 2군 경기에서의 시범 운용을 지켜본 심판들이 그 필요성에 공감하고 동의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ABS 방식은 이렇다. 여러 각도에서 설치된 카메라가 미리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해 놓은 뒤 공이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어오면 이어폰을 통해 주심에게 음성 신호로 전달하고, 심판은 이 소리를 듣고 볼 혹은 스트라이크 ‘콜’을 한다. 이를 위해선 고도의 AI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함은 물론이다.


■ 공정성과 정확성이 장점

ABS의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면 정확성과 공정성이다. 그동안 주심의 판정 때문에 선수와 심판 사이에 숱한 갈등이 일었던 게 사실이다. TV 중계 화면에 잡히는 스트라이크 존과 심판 판정이 어긋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선수는 선수대로 억울해했고, 심판은 심판대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이런 모습을 보는 팬들 역시 스트레스를 받았다.

ABS는 정교한 센서와 알고리즘을 통해 정확한 판정을 내리는 데 더 유리하다. 인간의 판정은 선수나 팀, 경기장 분위기 등 다양한 외부 요소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이런 주관적인 영향을 제거해 오류를 줄이고 모든 팀에게 공평한 판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 AI 심판의 긍정적 매력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보다 빠른 판단으로 판정 갈등이나 논란을 줄여 경기 진행 속도를 높이는 장점도 있다.

4년간의 2군 경기 시범 운용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약간의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볼카운트에 대한 이의제기는 별로 없었다고 한다. 시합하는 양쪽 팀에게 동일한 ABS가 적용되면 공정성 논란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1군 경기에 도입할 경우에도, 적어도 사람으로 인해 일어났던 판정 실수는 막을 수 있을 것으로 KBO는 보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볼·스트라이크 자동 판정 시스템의 시범 운영이 시작된 2020년 8월 4일, 경기도 이천에서 열린 퓨처스(2군) 리그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운영실 관계자들이 시스템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볼·스트라이크 자동 판정 시스템의 시범 운영이 시작된 2020년 8월 4일, 경기도 이천에서 열린 퓨처스(2군) 리그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운영실 관계자들이 시스템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 기술 오류 우려, 스포츠 묘미 실종?

하지만 ABS는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센서 오작동이나 소프트웨어 버그 등 기술적 오류로 잘못된 판정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결국 경기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판정 불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특히 현장의 선수들이 AI 판독의 정확성에 회의적이다. 투수마다 던지는 공의 높이, 탄도, 움직임이 제각각이라서다. 판독이 각도에 따라 다를 경우, 각도 하나 비틀어지면 그 경기의 모든 스트라이크 존은 달라진다.

AI 심판이 적용된 고교 야구를 지켜봤다는 김성근 감독은 최근 유튜브 채널에서 이런 말을 했다. “기계가 스트라이크를 안 잡아주니까 타자가 이를 악용한다. 배트를 휘두르지 않는 거다. 투수는 하는 수 없이 한복판으로 슬슬 던져야 한다. 이러면 야구의 질이 떨어진다.”

ABS에서는 주심이 AI의 음성을 전달받아야 하니까 직접 판단할 때와 달리 약간의 시차가 있다.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예컨대, ‘2스트라이크 3볼’에서 누상의 주자가 뛰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뒤늦게 스트라이크 판정이 날 경우, 주자는 다시 돌아와야 한다. 볼 판정 시간이 지연되면 이뿐만 아니라 각종 상황에서 집중력과 긴장감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야구의 묘미는 그때그때의 순간적 판단과 센스에 있는데, 그것이 반감되는 것이다. 주심의 개성 넘친 스트라이크 콜과 멋진 액션을 볼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심판의 판단이나 감정도 경기의 일부로 여겨져 왔다. 심지어 논란이나 갈등까지 경기의 재미 중 하나로 보는 사람도 있다. AI 심판은 이런 인간미를 없앤다는 점에서 아쉽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심판위원이 지난해 3월 대전에서 열린 볼·스트라이크 자동 판정 시스템 시연회에서 이어폰을 통해 들리는 로봇 심판 판정에 따라 볼 판정을 내리는 모습. 연합뉴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심판위원이 지난해 3월 대전에서 열린 볼·스트라이크 자동 판정 시스템 시연회에서 이어폰을 통해 들리는 로봇 심판 판정에 따라 볼 판정을 내리는 모습. 연합뉴스

■ 한국 야구 발전의 계기로

AI 야구 심판 1군 리그 정식 도입. 결국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은 한국에게 돌아왔다. 고교 야구와 2군 경기의 시범 운용에서 ABS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는 게 KBO의 판단이다. 메이저리그는 트리플A에서 AI 심판을 적용한 결과 경기 진행 시간이 더 늘어나자 도입을 유보한 상태다.

어쨌든 새로운 제도의 시행이 확정된 만큼 선수들은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 때부터 변화한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개막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시즌이 열리면 ABS에 대한 여론이 어떤 식으로든 형성될 것이다. 새 제도에 대한 면밀한 체크와 함께 그에 걸맞은 재조정 작업도 필요에 따라 제기될 수 있다고 본다.

가장 중요한 건 경기의 품질과 야구팬의 신뢰를 확보하는 일이다. 요컨대, 한국 야구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한국 야구의 미래에 최선의 선택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갑진년은 한국 야구 변신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향후 세계 프로야구의 트렌드를 주도할 역량도 여기 달려 있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