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김정은의 ‘전쟁할 결심’ 실전으로 이어질까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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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접경지역 도발 핵 전술 고도화 가속
국지적 도발이 전면전으로 확전 우려
안보 상황에 다각도 대비 필요한 한 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해를 넘기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중동 전면전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으며 세계는 지금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해 들어서는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 고조가 지구촌 평화를 위협하는 새로운 요소로 등장했다. 외신들이 잇따라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주목하기 시작한 가운데 북한의 움직임에 무심하던 백악관에서조차 김정은의 도발을 우려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잊고 지내는 사실이지만 한반도는 지금도 전쟁 중이다. 정확히 말하면 ‘휴전’ 상태다. 언제든 전쟁이 재개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희박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한반도가 안고 있는 숙명적 리스크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8~9일 중요 군수공장을 현지 지도한 자리에서 “조선반도에서 압도적 힘에 의한 대사변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지는 않겠지만 전쟁을 피할 생각 또한 전혀 없다”며 전쟁 준비를 지시하고 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8~9일 중요 군수공장을 현지 지도한 자리에서 “조선반도에서 압도적 힘에 의한 대사변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지는 않겠지만 전쟁을 피할 생각 또한 전혀 없다”며 전쟁 준비를 지시하고 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전쟁 준비를 서두르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연말 노동당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남북을 적대적 두 교전국 관계로 정의하며 ‘남조선의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를 명령했다. 헌법을 고쳐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이자 ‘불변의 주적’으로 명기하고 ‘통일’을 삭제했다. 선대 수령들이 추진한 정책마저 전면 부정하며 남북 관계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최근 평양의 통일거리 남쪽 입구에 세워져 있던 ‘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도 철거한 사실이 위성사진을 통해 확인됐다.

새해부터는 대남 도발 수위도 높이고 있다. 지난 5일 백령도 북방 장산곶과 연평도 북방 등산곶 일대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북쪽으로 200여 발의 포격을 강행했다. 14일에는 동해상으로 고체연료 추진체계가 적용된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24일에는 서해상으로 순항미사일 여러 발을 발사한 게 우리 합동참모본부에 포착됐다.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미사일총국이 개발 중인 신형전략순항미사일 ‘불화살 3-31’형이라고 보도했다. 접경지역에서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핵 전술 고도화를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24일 신형전략순항미사일 ‘불화살 3-31’형 첫 시험 발사를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5일 보도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북한은 지난 24일 신형전략순항미사일 ‘불화살 3-31’형 첫 시험 발사를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5일 보도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외신, 한반도 전쟁 가능성 주목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의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시그프리드 해커 교수는 북한전문매체 38노스 기고문에서 “한반도 상황이 한국전쟁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며 “북한 관영매체에 등장하는 ‘전쟁 준비’ 메시지는 북한이 통상적으로 하는 ‘허세’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명예교수도 미국 외교안보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 기고에서 “2024년 동북아시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최소한 염두에는 둬야 한다”고 밝혔다. 갈루치 교수는 1994년 1차 북 핵 위기 당시 미국 특사로 대북 협상을 담당하면서 북한 핵무기 개발 중단을 대가로 경수로와 관계 정상화를 약속한 북미 제네바 합의를 성사시켰던 인물이다.

북한의 도발 위협에 대해 미국 정부와 언론의 관심도 점점 커지는 양상이다. 23일(현지시간) 백악관 언론 브리핑에서는 ‘북한이 전쟁 준비를 하고 있느냐’ ‘북한의 군사 태세에 변화 조짐이 있느냐’는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와 관련해 백악관 존 커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우리는 핵 능력을 포함해 군사력의 지속적 증강을 추구하는 체제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김정은 위원장)의 수사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군사 동향에 대해서도 “매우, 매우 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예멘 후티 반군과의 충돌 등의 안보 현안에 밀려 있던 북한 이슈가 다시 살아나는 기류다.



지난 25일 경기도 포천시 승진과학화훈련장에서 실시된 제병협동사격훈련에서 육군 17사단 장병이 차륜형 장갑차에서 하차 후 사주경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5일 경기도 포천시 승진과학화훈련장에서 실시된 제병협동사격훈련에서 육군 17사단 장병이 차륜형 장갑차에서 하차 후 사주경계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선거철 틈타 몸값 키우려는 의도

일부에서 제기되는 한반도 전쟁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실제 무모한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북한이 최근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것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내부 체제 보안을 강화하고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정부의 재등장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몸값을 높이는 동시에 한국의 4월 총선에도 영향을 미치려는 복합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실제 북한은 한국과 미국의 선거철이면 도발을 감행했다. 2012년 말 미국 대선 직후 한국 대선 직전 시기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고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후 핵실험을 실시했다. 또 2016년 미국 대선 두 달 전 핵실험을 다시 감행했다.

북한도 전면전은 정권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전쟁 능력을 강화하고 남한을 향한 태도가 강경해지고 있지만 그 어느 것도 김 위원장이 정말 전쟁을 원하고 있음을 시사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도 북한은 자멸하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한 전쟁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고 이길 수 없다는 것도 너무 잘 안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북한 정권이 진지하게 전쟁을 준비한다면 무기와 탄약을 러시아로 보내지 않고 비축하고 있을 것이라며 실전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음을 시사했다.



한파가 기승을 부린 지난 23일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얼어붙은 임진강 하구 너머로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일대가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한파가 기승을 부린 지난 23일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얼어붙은 임진강 하구 너머로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일대가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우발적 확전 가능성에는 대비해야

북한의 전쟁 도발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축하면서도 국지적 도발 가능성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다. 북한이 일부 영토와 군을 상대로 도발을 감행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에 대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압박 중심 대응이 위험을 키울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한미 간 억제 조치 강화가 위기 상황을 사전에 봉쇄할 수 있다고 느낄 수 있지만 압박 기반의 강압적 방식은 때론 상황을 더 악화시켜 왔다고 밝혔다. 지금은 북한의 침공보다는 남북 간 우발적 충돌에 따른 확전 가능성을 크게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미동맹이 공고해지고 북미 대화 가능성이 희박해지면 북한이 제한적 방식의 핵무기 사용 방법을 찾아낼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이 자멸을 원하지 않겠지만 그가 어떤 세계관을 가졌는지 우리가 잘 모른다는 것은 그의 오판 가능성도 포함하는 이야기다. 현재 북한은 핵무장이 고도화돼 언제든 핵을 쓸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한반도에서 우발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 ‘즉시, 강력하게, 끝까지’란 표현으로 우리 대응 전략을 밝혔는데 이런 게 확전 가능성을 키울 수도 있다. 북한의 위협에 지나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지만 위기관리는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주문한다.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면 경제적으로도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게 우리 딜레마다. 북한 도발에 대한 충분한 억지력을 확보하면서도 위기관리를 위한 노력을 동시에 해야 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남북 간에 군사 채널이든 뭐든 있었는데 지금은 북한이 조평통(조국평화통일위원회)까지 없앤 마당이다. 한미일 공조는 물론이고 중국과의 외교를 통한 통합 억지력도 필요한데 우리 외교에서 취약해진 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재집권이 몰고 올 다양한 영향에 대해서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트럼프 집권 시 북미 간에 소위 비핵화 교섭이 아닌 핵 군축 교섭이 진행되고 한국의 핵무장 요구가 비등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래저래 한반도 안보 상황에 대해 다각도로 대비해야 하는 한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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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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