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하이페츠의 '샤콘', 울기 좋은 날의 음악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음악평론가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1953년). 위키미디어 제공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1953년). 위키미디어 제공

매년 2월 2일이 되면 왠지 바이올린곡을 하나쯤 들어야 할 것 같다. 바이올리니스트 프리츠 크라이슬러가 1875년 오늘 태어났고, 야샤 하이페츠가 1901년 오늘 태어났기 때문이다. 20세기를 통틀어 최고의 인기를 누린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는 제정 러시아의 빌나에서 태어났다. 세 살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해 여섯 살에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공개 연주회를 했다. 러시아가 혁명으로 요동치자 하이페츠는 미국으로 왔다. 극도의 집중력과 대담함, 가까이하기 힘든 위엄, 완벽한 컨트롤을 보여주며 ‘바이올린의 황제’로 군림했다. 그의 연주를 듣고 인디애나대학 교수로 있던 요제프 긴골드는 이렇게 말했다. “하이페츠는 항상 나의 우상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하이페츠의 초기 녹음을 들으며 자랐다. 하이페츠는 당시에도 이미 위대했다. 이제 내가 늙어서 그 음반들을 다시 들으며 생각해 보니 언제보다 더욱 위대하다.”

하이페츠는 RCA 레코드사와 함께 방대한 녹음을 남겨 놓았다. 그중에서 오늘은 비탈리의 ‘샤콘’을 같이 나누고 싶다. 안토니오 토마소 비탈리(Antonio Tomaso Vitali, 1663~1745)는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작곡가다. 당시에는 꽤 유명했지만 죽은 후에 사람들에게 잊혔고, 그의 음악 역시 역사 속에 묻혀 있었다. 이 곡이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은 1867년 독일의 바이올리니스트 페르디난도 다비드가 편곡해 발표하면서부터다. g단조의 낭만적인 선율과 드라마틱한 몰입감으로 주목받았지만, 정말 비탈리의 곡일까에 대해선 진위 논란이 일었다.

‘샤콘(chaconne)’은 17세기 남부 유럽에서 유행한 3박자의 춤곡 이름인데, 바로크 시대 기악 모음곡에 널리 쓰였다. 춤에서 벗어나 기악 영역으로 들어온 샤콘은 대단히 장중한 성격으로 변화했다. 그중에서도 비탈리의 ‘샤콘’은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에 나오는 ‘샤콘’이 지상을 떠나 우주로 빨려드는 듯하다면, 비탈리의 ‘샤콘’은 지상에 발을 붙인 인간의 통곡이다. 특히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가 리처드 엘새서의 오르간 반주로 녹음한 음원이 그러하다. 온몸을 감싸는 오르간 소리를 뚫고 절규하는 바이올린의 격정에 몸을 떨게 만든다.

오래전, 이 음반이 한국에서 CD로 처음 발매될 때 해설지를 썼는데, 그때 “지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지금 생각하면 다소 과장된 제목이긴 하지만, 덕분에 비탈리 ‘샤콘’이 많이 알려진 것 같기는 하다. 드러내 놓고 울 수 없어서 혼자 웅크리고 있을 때, 곁에서 나처럼 울어줄 수 있는 음악이다.

하이페츠가 연주한 비탈리 '샤콘'.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